상속세 폐지 억지 주장… 재산만 상속하지 왜 경영권까지 세습하려 하나.
경제지들이 상속세 폐지에 발 벗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자 단체들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는 형국이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기업의 영속성을 해친다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한국경제는 아예 “중소기업 가업 승계는 미래다”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이 신문은 21일 1면 “‘부의 대물림’ 아닌 ‘제2창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소기업 Y사의 사례를 들면서 “연 매출 300억원, 자산가치 200억원인 회사를 물려주려면 무려 100억원 가량의 증여세를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 세율은 1억원 이하 10%, 5억원 이하 20%, 10억원 이하 30%, 30억원 이하 40%, 그 이상은 50%씩이다. 원칙적으로 200억원을 상속하려면 100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이 회사 대표 L씨의 입을 빌어 “어렵게 가업을 이끌어가는 중소기업에 훈장을 주지는 못할망정 되레 세금 폭탄을 퍼붓는 것 같아 섭섭하다”고 전하고 있다. 이 신문은 “경영수익의 대부분을 재투자해 따로 모은 재산이 없는 그로서는 공장 땅과 설비 절반을 떼어내 팔아야 하는 현실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일단 이 기사는 기본적인 사실 관계부터 잘못돼 있다. 200억원의 자산을 상속할 경우 세율 50%를 적용해 상속세가 100억원인 것은 맞지만 올해부터 도입된 중소기업 증여세 특례제도를 활용하면 10년 이상 가업을 유지해온 60세 이상 부모가 일정 요건을 갖춘 법인 주식을 18세 이상 자녀에게 증여할 때 30억원을 한도로 5억원을 공제받고 10%의 단일세율을 적용 받는다. 이 경우 상속세가 20억원 미만으로 줄어든다.
또한 세금을 내기 위해 공장 땅과 설비를 떼어내 팔아야 한다는 건 지나친 과장이다. 당장 현금이 없다면 주식 현물 등으로 물납을 할 수도 있고 상속세 관련 대출 상품도 많이 나와 있다.
더 큰 문제는 아무리 중소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창업자가 자신의 자산과 회사의 자산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의 공장 땅이나 설비는 L씨의 소유가 아니라 회사의 소유다. 만약 L씨의 아들이 세금을 내기 위해 상속자산의 일부를 처분해야 한다면 그건 이 회사의 자산이 아니라 자신의 지분이 돼야 한다. 그런데 이 신문을 이를 교묘하게 뒤집어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의 경영이 흔들린다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윤종훈 법무법인 덕수 회계사는 “경영권과 재산권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재산권은 세금을 내고 상속될 수 있지만 경영권은 상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재산을 물려받으려면 세금을 내고 물려받고 경영권을 물려받으려면 주주들에게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전문경영인으로 들어가면 된다. 윤 회계사는 “자자손손 경영권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발상부터 문제가 많다”면서 “능력 없는 창업자 2세가 경영일선에 나서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상속·증여세는 부의 세습을 막자는 취지에서 무상으로 이전되는 재산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사람마다 출발선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만 출신 성분이나 계층에 따른 구조적인 불평등을 완화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세계 최대의 부자인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등이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87년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낸 상속세가 70억원 밖에 안 됐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