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jeonghwan.com

얇고 빠르지만 어딘가 아쉬운 SSD.

인텔의 공동 설립자 고든 무어는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용량이 18개월 마다 두배씩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무어의 법칙이라고 한다.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은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해마다 두배씩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른바 황의 법칙이다. 황의 법칙은 무어의 법칙을 대체하는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돌아보면 삼성전자는 1999년 256MB 낸드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처음 개발한 이래, 2000년에는 512MB, 2001년에는 1G를 개발했다. 2002년에는 2G, 2003년에는 4G, 2004년에는 8G, 2005년에는 16G, 지난해에는 32GB 개발까지 성공했다. 32GB면 MP3 파일 8천개에 단행본 220만권을 한꺼번에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이런 메모리를 저장장치로 쓰면 어떨까. 물론 USB 메모리는 다들 쓰고 있지만 아예 하드디스크 대용으로 컴퓨터에 내장하면 어떨까. 이런 아이디어에서 나온 새로운 저장장치가 바로 SSD다. 솔리드 스테이트 디스크, 쉽게 풀어 말하면 고체 디스크 또는 반도체 디스크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저장 방식의 하드디스크는 충격을 받으면 데이터가 날아가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배드 섹터가 생기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시끄럽고 뜨겁다. 모터로 돌리는 디스크를 핀으로 읽는 방식이라 지름 안쪽과 바깥쪽을 읽는 속도도 다르다. SSD는 하드디스크의 이런 단점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뉴틸이라는 곳에서 필드 테스터를 모집한다길래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SSD가 하드디스크를 대체할 수 있을까. 플로피 디스크나 거슬러 올라가면 테이프 레코더가 사라졌던 것처럼, 그리고 CD가 DVD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것처럼 하드디스크도 이제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되는 것일까.

뉴틸에서 받아온 SSD는 세계 최초로 익스프레스 카드 슬롯과 USB 포트를 동시에 지원하는 제품이었다. 아직 프로토 타입 단계라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쇠를 깎아서 만든 것 같은 거친 디자인이다. 그날 시연회에서는 이런 디자인으로는 절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첫 번째 관건은 무엇보다도 가격이었다. 아직 정확한 가격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4GB 제품이 8만원 이상, 16GB 제품은 20만원대 후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트북용 하드디스크의 경우 100GB 제품을 8만원 수준이면 살 수 있다. 일반 PC용이라면 400GB 제품도 10만원 수준에 살 수 있다.

두 번째 관건은 속도다. 구체적인 벤치마크 테스트는 따로 해봐야겠지만 약간 빠르다는 느낌 이상은 아니었다. 요즘은 워낙 하드디스크의 속도가 빨라진 덕분이다. 물론 USB 메모리나 USB 외장하드보다는 상당히 빠르지만 가격을 감안하면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 번째 관건은 전력 소모다. 물론 하드디스크보다는 훨씬 전력 소모가 적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노트북에서 가장 전력을 많이 잡아먹는 부품은 LCD 화면이다. 하드디스크를 SSD로 바꾼다고 해도 배터리 지속 시간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PC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력 소모 때문에 SSD를 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SSD를 써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우선 SSD의 매력은 읽고 쓰는 속도 보다는 데이터 액세스 속도에 있다. SSD와 하드디스크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쉽다. 하드디스크는 핀이 왔다 갔다 하면서 디스크를 읽는 방식이고 SSD는 메모리에서 바로 불러들이면 되는 방식이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개의 파일을 한꺼번에 읽어야 할 때 SSD의 속도는 놀랄만큼 빨라진다.

이를테면 사진 수천장이 들어있는 폴더를 열어 미리 보기를 할 경우, 하드디스크라면 컴퓨터가 거의 맛이 가겠지만 SSD는 상대적으로 스크롤이 훨씬 부드럽다. 대용량 게임을 할 때나 읽고 쓰는 작업이 많은 프로그램을 돌릴 때 SSD의 매력을 절감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속도의 차이가 10배 이상의 비용을 지불할만큼 매력적이냐는 것이다.

안현철 사장은 윈도우XP의 스왑파일이나 윈도우 비스타의 레디부스트를 SSD 파티션에 지정하면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고 설명했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발상이다. SSD는 D램 메모리보다 훨씬 비싸다. 속도를 늘려야 한다면 시스템의 메모리를 늘리지 굳이 왜 SSD를 사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속도에 민감한 사용자라면, CPU와 메모리를 최적의 상태로 업그레이드하고도 하드 디스크의 읽고 쓰기 속도 때문에 답답한 사람이라면 하드디스크를 SSD로 대체하는 것도 좋다. 운영체제만 SSD에 집어넣고 데이터는 하드디스크에 두는 것도 좋다. SSD는 귀중한 데이터를 저장하기에도 훨씬 더 안전하다.

낸드 플래시 가격이 내려가면 SSD의 가격도 지금보다 훨씬 더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하드디스크 역시 훨씬 용량이 늘어나고 가격 또한 낮아질 것이다. 아마도 장기적으로는 SSD가 살아남게 되겠지만 SSD가 지금의 하드디스크 정도로 가격이 충분히 낮아질 때까지 그때까지만 하드디스크는 살아남을 것이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 용도는 얼마든지 있다. 얇기 때문에 셔츠 주머니에 쏙 넣을 수도 있고 USB 메모리 보다 용량도 훨씬 크다. 하드디스크를 추가로 늘릴 수 없는 노트북 사용자라면 SSD에 리눅스 등의 다른 운영체제를 설치하고 듀얼부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직접 시도해보고 결과를 따로 적을 계획이다.

아직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 보이지만 결국 SSD는 추세가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SSD는 너무 일찍 왔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오기는 오겠지만 지금은 시장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용량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고 가격이 충분히 낮아지기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가 관건이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