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의 아들이 신종 인플루엔자에 걸렸는데 타미플루를 구하지 못해 아무런 치료도 받을 수 없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존 큐’에서 심장수술을 해야 살 수 있는 아들을 둔 존 아치볼드는 수술비를 구하지 못하자 인질을 잡고 병원을 점거한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일단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닌가. 존 아치볼드의 주장은 정당하다. 그런데 신종 인플루엔자의 문제는 좀 더 심각하다.


일단 신종 인플루엔자는 약이 없다. ‘약이 없다’는 건 중의적인 의미가 될 수 있는데 지금 환자들에게 처방하고 있는 타미플루는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약이 아닌데다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몇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타미플루 사재기가 계속됐는데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11% 분량을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대유행병으로 번지고 타미플루가 전혀 듣지 않는 강력한 변형 인플루엔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해서는 안 되겠지만 당면한 위험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아직까지는 환자를 격리하거나 학교를 휴교하는 것으로 전염을 차단할 수 있지만 환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학교나 회사를 안 나갈 수도 없다. 사망률이 낮다고는 하지만 운이 나쁘면 병에 걸리고 운이 더 나쁘면 약도 못 써보고 죽게 된다. 대유행병이 확산되면 다들 집에서 겨울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5천만명이 죽었고 1968년 홍콩 독감은 150만명이 죽었다. 신종 인플루엔자 역시 대유행병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대유행병이 되면 인구의 20~40%까지 감염될 수 있다. 백신이 있긴 하지만 백신을 맞더라도 100% 예방되는 것도 아니고 백신 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은 국민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그나마도 11월이 돼야 수급이 가능한 상황이다.

일부 병원에서 환자를 거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헬스로그에 올라온 여러 의사들의 문제제기를 종합하면 의사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보건소가 아닌 일반 병원이나 종합 병원에서는 검사를 외부에 의뢰해야 하는데다 아직 건강보험 적용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일반 병원이나 종합 병원에는 타미플루 처방권한이 없다. 보건소에 가시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이야기다.

예방약도 부족하고 치료약은 없고 비슷한 치료약은 있지만 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타미플루가 품귀 현상을 빚게 될 가능성이 커지자 정부는 국민 한 사람에 타미플루를 한 번만 처방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허를 풀고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전재희 장관은 “아주 위급한 상황이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을 수도 있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타미플루의 특허권을 강제실시해야 한다. 타미플루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의료 시스템을 정비해서 국민들이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치료제의 남용을 막아야겠지만 적어도 병에 걸렸는데 약이 없어서 손도 못 써보고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제적으로 제약회사들에게 압력을 넣고 특허권 사용료에 대한 합의를 끌어낼 수도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이미 대유행병으로 확산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몇 달 뒤면 백신을 맞으려고 병원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사진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백신이 동이 났다는 기사와 함께 감염자가 하루 1천명씩 늘어나고 초중고등학교가 잇따라 휴교에 들어가고 회사도 임시 휴업에 들어가고 대중교통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라면이나 비상식량을 사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게 괜한 걱정 같은가.

참고 : 사람이 얼마나 죽을지 모르는데 특허권 따질 땐가. (이정환닷컴)
참고 : ‘조류독감’을 읽다. (이정환닷컴)
참고 : 조류독감, 1500만명 감염 가능성… 치료약은 100만명 분량 뿐. (이정환닷컴)
참고 : 눈 앞에 다가온 신종 플루의 공포. (헬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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