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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소송, 하나금융이 이겼으니 한국 정부도 이길 거라고?

Written by leejeonghwan

May 17, 2019

론스타가 하나금융지주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론스타는 3년 전인 2016년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에 중재 신청을 냈다. 2012년 외환은행을 매각한 뒤 4년 만이다. 핵심은 하나금융이 정부 핑계를 대면서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후려쳐서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매각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한국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는 주장이다. 일단 명시적으로 정부의 압박이 있지 않았다면 거래는 쌍방이 합의해서 이뤄지는 것이고 당연히 론스타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보는 게 맞다. 국제중재재판소가 론스타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결과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투자자-국가 소송(ISD)이다. 둘 다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사건이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ICC에서는 하나금융이 론스타에 손실을 끼쳤느냐가 쟁점이고 ISD에서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손실을 끼쳤느냐가 쟁점이다. 당연히 하나금융과 론스타의 거래는 론스타의 선택에 의한 것이니 손실이고 뭐고 따질 이유가 없다. 실제로 한국 정부의 압박이 있었다면 그건 하나금융이 아니라 한국 정부에 가서 따질 일이고 가격을 낮춰 잡은 건 론스타의 선택이니 애초에 론스타가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그래서 ICC 결과와 무관하게 ISD는 여전히 전망이 밝지 않다. 일부 언론의 설레발은 안타깝게도 희망 사항일 뿐이다.

론스타의 주장은 첫째,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의 매각 승인을 부당하게 지연시켜 가격이 급락했다는 것이고 둘째, 부당하게 세금을 과잉 징수했다는 것이다.

세금 문제는 우리 정부에 명분이 있지만 매각 지연은 한국 정부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게다가 ISD는 기업에 우호적인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1심으로 끝난다.

론스타는 2007년 HSBC와 매각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적 있다. 당시 거론됐던 가격이 6조 원, 그러나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카드 주가 조작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승인 심사를 미뤘고 매각이 무산됐다. 전광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외환카드 주가조작 재판 등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계기가 있어야 되고, 국민 정서도 감안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매각 승인이 9개월 가까이 지연됐고 결국 무산됐다.

론스타가 낸 중재 의향서에 따르면 론스타는 당시에도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지연시키면 중재 신청을 낼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통보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를 묵살했거나 공개하지 않았고 5조 원 소송에 이르기까지 방치했다.

‘투기자본의 천국’에서 자세하게 썼지만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불법이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다만 한국 정부는 여러 차례 문제가 없다고 선언했고 그러면서 동시에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시켰다. 한국 정부가 국민 정서를 이유로 부당하게 매각을 지연시켜 손실을 봤다는 게 론스타의 주장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고 재판 내용조차 비밀에 부치고 있다. 실제로 5조 원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한 금액을 물어줘야 할 가능성이 크다.

안타깝게도 론스타의 주가 조작 재판과 외환은행 매각은 별개의 사건이다. 애초에 주가 조작이 무죄든 유죄든 그걸로 매각을 막을 명분이 없다. 이와 별개로 론스타가 비금융 주력자인 것으로 드러났다면 뒤늦게 매각을 명령할 것이 아니라 외환은행 인수를 원인 무효 처리했어야 했고 관련자들을 처벌했어야 했다. 그래야 론스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팔고 떠나겠다는 외국인 투자자를 국민 정서 때문에 발목을 잡았다, 이건 ISD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이슈다. 안타깝게도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주장에 어떤 논리로 반박하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국익을 위해 비공개한다? 재판 과정에서 다 까놓고 이야기할 일을 국민들에게만 공개하지 못할 국익이란 건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이다.

그래서 론스타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일부든 전부든 패소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됐는지 복기하면서 책임을 묻고 시스템을 바로 잡는 시작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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