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노스와 월스트리트저널.

A still from The Inventor: Out For Blood in Silicon Valley by Alex Gibney, an official selection of the Documentary Premieres Program at the 2019 Sundance Film Festival. Courtesy of Sundance Institute | photo by Drew Kelly.

Scroll this

“테라노스가 운영되는 방식은 버스를 운전하면서 버스를 만들고 있는 것과 같아요. 도중에 누군가는 죽고 말 거에요.”

‘배드 블러드’에서 흥미로웠던 대목은 월스트리트저널의 내부 게이트키핑 시스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존 캐리루가 테라노스의 사기극을 폭로하기 17개월 전에 테라노스를 가장 먼저 띄운 언론사가 월스트리트저널이었다.

“내가 만일 기사를 발표하게 되면 상황이 어색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에는 논설위원실과 보도국 직원들 사이에 방화벽이 있었다. 내가 홈즈의 벽장에서 해골을 몇 개 발견한다고 해도 두 부서가 서로 반대되는 기사를 발표하는 것이 처음은 아닐 테니 말이다.”

취재를 끝내놓고 몇 달씩 검증 절차를 둔다는 것도 흥미롭다.

“나는 1주일 전에 기사의 초안을 제출했는데 편집장이 작업을 끝내면 신문사의 1면 편집장에게 보내 아래 직원들이 두 번째로 더 자세히 편집을 하게 된다. 그 다음 윤리와 규범을 총괄하는 표준 편집자(standard editor)와 변호사가 한 줄씩 읽으며 철저히 확인한다. 이는 종종 몇 주에서 몇 개월이나 걸이는 느린 과정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는 아무도 놀라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우리는 기사의 당사자에게 우리가 수집한 모든 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반박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주기 전까지는 절대로 먼저 기사를 싣지 않는다.”

“마이크는 인내심을 갖고 신중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이 기사는 폭탄 선언이므로 세상에 꺼내놓기 전에 내용에 아무런 구멍이 없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으며 이탈리아의 비유를 사용하기 좋아했다.”

“내가 라 마탄자(la mattanza)에 대해 말해준 적 있나.”

“마이크가 물었을 때, 아, 이런 또 시작이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라 마탄자는 어부들이 곤봉과 창을 들고 지중해 바다에서 물이 허리까지 올 정도까지 나아가 물고기가 더 이상 그들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때까지 몇 시간이고 서 있었던 고대 시칠리아의 의식이다. 마침내 그들 주위에 물고기가 충분히 모여들면 누군가가 조용히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어부들이 아무 낌새도 못 채는 사냥감을 맹렬히 내리쳐서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던 곳이 순식간에 피투성이의 대학살 장소로 바뀌게 된다. 마이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저널리즘의 라 마탄자라고 설명했다. 보도할 준비가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우리가 선택한 시기에 공격에 나서는 것이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은 완벽한 준비가 될 때까지 기사를 계속 보완했다. 테라노스의 거물급 변호사들이 협박과 로비를 계속했지만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좀 더 명확한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홈즈가 월스트리트저널의 최대 주주 루퍼트 머독과 네 차례나 만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같은 건물 3층 위에서 머독과 홈즈가 만나고 있는데도 케이루는 전혀 몰랐다고 한다. 머독은 테라노스에 무려 1억 달러나 투자한 상태였지만 기사에 개입하지 않았다. 홈즈가 취재를 중단해줄 것을 요청하자 “우리 기자들이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할 것이고 그들을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패한 투자를 기사를 막는 것으로 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머독은 기사가 나간 뒤 테라노스의 주식을 1달러에 처분해 손실로 신고했다. 케이루는 “머독은 덕분에 다른 투자로 얻은 수익에 대한 세금을 대폭 감면 받을 수 있었다”고 조금 시니컬하게 평가하고 있다. “12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머독은 잘못된 투자의 대가로 1억 달러를 잃을 여유가 있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케이루 못지 않게 대단한 용기를 보여준 사람이 조지 슐츠 전 국무부 장관의 손자인 타일러 슐츠다. 기자에게 제보를 하고 엄청난 소송 협박에 시달리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고 끝까지 홈즈를 감쌌던 할아버지와 관계도 멀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기사가 나간 뒤에도 크리스마스 파티에 손자 대신에 홈즈를 초청했다. 진실을 폭로하는 대가로 타일러의 부모가 소송 비용으로 치른 돈이 40만 달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