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제독과 지휘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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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KBS교향악단 단원들이 법인화 전환을 반대하면서 파업에 돌입했을 때 미디어오늘이 몇 차례 기사를 쓴 적 있습니다. 단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투쟁했지만 결국 법인화를 막지 못했고 독립 법인으로 분리된 이후 무더기 징계와 구조조정이 진행됐습니다.

저는 당시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을 맡고 있었는데 하루는 KBS교향악단 단원들이 도와줘서 고맙다며 간식거리를 사들고 회사에 찾아온 적 있었습니다. 이들과 나눴던 이야기는 리더십과 조직 관리에 대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습니다.

1956년에 창단한 국립교향악단이 모태였던 KBS교향악단은 한때 국내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던 오케스트라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준으로 연간 80억 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예산을 쓰면서도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단원들은 지휘자 함신익의 심각한 리더십 부재를 문제 삼았습니다. KBS가 법인 전환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함신익은 반대하는 직원들을 찍어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연습실에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해서 단원들을 감시하고 캠코더를 든 직원들을 보내 채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단원들은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지휘자가 단원들 편에 서기 보다 KBS의 입장에 섰고 단원들을 믿지 못했다는 이야기겠죠. 법인화 전환을 설득하지 못했고 오히려 80여명의 단원들 가운데 71명에게 징계를 남발하면서 몰아붙였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함신익이 지휘자로서의 실력 미달인지 조직의 리더로서 자질 미달인지 어느 것이 더 큰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단원들은 함신익의 자질 부족을 문제 삼았습니다. 당시 한 단원은 “지휘자의 실력을 계량화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연습할 때 음정을 틀려도 지휘자가 모른다”면서 “서로 다른 악기 사이의 미세한 차이도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단원들은 “서커스는 하기 싫다. 실력 없는 지휘자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미디어오늘에 찾아왔던 단원들은 “이런 지휘자는 처음 봤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예일대학 교수를 지냈고 세계적으로 굴지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던 ‘네임드’ 지휘자에 대한 거센 반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단순히 파업 중인 노동자들의 감정적인 반발이었을까요.

저도 나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아 물어봤습니다. 실제로 지휘자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한가? 단원들 이야기로는 지휘자의 눈빛 한 번, 손끝 하나하나 움직임에 따라 음악의 흐름과 속도와 감정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함신익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고 말이죠. 신호를 줘야 할 때 주지 않고 흐름을 읽어야 할 때 객석을 의식해 쇼잉을 한다는 겁니다. 단원들 입장에서는 황당무계할 뿐이라는 거죠.

애초에 함신익이 2010년 3월 예술감독에 내정될 때부터 단원들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청와대 낙하산이라는 소문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단원들의 93%가 반대 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이 투표 결과는 효력이 없었고 함신익은 상임 지휘자에 임명됐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지휘자는 단상에 설 수가 없습니다. 실력으로 찍어누를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거대한 화음을 끌어낼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를 실험하는 경우도 있었고 지휘자가 없을 때는 수석 오케스트라가 대신하기도 하지만 지휘자는 곡의 해석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빛이나 손짓이 정해진 공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신호를 만들고 따라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100명 안팎의 단원들이 보는 듯 안 보는 듯 지휘자가 건네는 신호를 타고 서로서로와 조율을 하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메트로놈처럼 칼로 자른 듯 날카로운 해석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감정을 타고 넘나들면서 자유로운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그 흐름에 함께 올라타야 화음을 이룰 수 있는 것이죠.

함신익은 그걸 실패했던 겁니다. 실제로 오케스트라 앞에서 춤을 췄을 뿐이라면 애초에 지휘자로서 기본 자질도 갖추지 못했던 사람이 화려한 경력과(그마저도 조작 논란이 있었습니다) 외모,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해 자리를 차지하고 찍어누르려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함신익 이전에 6년 동안 상임 지휘자를 맡았던 미디트리 키타엔코가 단원들에게 편지를 보낸 적 있는데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극작가 김상수 선생님이 당시 KBS 단원들을 위해 싸우면서 미디어오늘에 연속 기고를 했는데 그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오케스트라를 위한 불변의 규칙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구성원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은 상임 지휘자로 임명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KBS교향악단 단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함신익이 상임지휘자로, 후에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나의 견해로는 KBS 임원진들의 그러한 행동은 강압적이고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단 한 번도 함신익에 대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지휘자로서 나에게 절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유럽, 미국이나 일본에서 지휘를 한 적이 있습니까?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함신익 한 사람을 위해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전체 오케스트라가 파멸에 이르게 되었는지.”

저도 작은 조직의 경영을 맡고 있으면서 함신익처럼 적당히 춤만 추는 리더가 아니었는가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면으로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밖으로 비춰지는 모습에 더 신경을 쓰고 이미지를 포장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직의 경영이라는 게 정치적인 성격도 없지 않고 인간 관계와 힘의 균형에 더 많이 좌우되는 측면도 있고요.

3년 전, 제가 미디어오늘 사장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제 아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편집국장을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기자의 꽃은 편집국장이다. 작은 조직이지만 당신이 마음 먹은대로 방향을 설계하고 의제를 제안하고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반면 사장은 편집에 거리를 두고 열심히 돈을 벌어 편집국을 서포트해야 하는 자리다. 무엇을 얻고 잃는지 생각해 봐라.”

다른 친구들도 만류했습니다. “해군 제독과 검찰총장, 언론사 데스크는 권력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해볼 만한 자리다, 압도적인 권력과 무조건적인 충성, 한 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올 수가 없지.”

물론 미디어오늘 같은 조직에서 언론사 데스크의 권력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처럼 수평적인 조직에서는 가장 일을 많이 하면서도 존중 받지 못하고 오히려 끊임 없이 비판을 받아내야 하는 숙명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함신익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압도적인 권력과 무조건적인 충성이 따르는 자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론사 데스크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도, 실력이 없으면 존중을 받을 수 없고 권력으로 찍어누른다 한들 억지로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실력에 대한 존중이든 공동체에 대한 신뢰든, 가치의 공유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언론사나 오케스트라 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노동자이자 회사원이면서 동시에 가치를 공유하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사의 데스크는 해군 제독이나 외항선 선장 보다는 지휘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이 있다면 찍어누를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하려는 건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어느 방향이 옳은 방향인가 하는 것입니다. 데스크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바다를 가르고 신탁을 내려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집단지성을 끌어내고 우리 안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연주자를 모아놓고도 엉터리 음악을 만드는 지휘자가 있고 아마추어 고등학생들을 모아놓고도 감동적인 화음을 만들어내는 지휘자도 있습니다. 연주자들의 실력을 탓해 봐야 그건 지휘자로서 자질 부족을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죠.

저는 지금은 데스크는 아니고 언론사 경영을 맡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데스크와 편집국의 갈등을 조정하고 가치의 공유를 끌어내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게 저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훌륭한 지휘자의 자질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곤 합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도 개별 기사 하나하나에 훈수를 두거나 딴죽을 거는 게 아니라 크게 방향을 제안하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는 확신을 불어넣고 구성원들의 열정을 끌어내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결국 조직에 대한 자긍심이 우리 내부의 숨겨진 역량을 발견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명과 가치가 조직의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광형 교수님 수업에서 배웠던 것처럼 영향력의 원을 더 넓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최고의 지휘자가 될 수는 없더라도 계속해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목표를 일깨우고 습관을 만드는 것, 우리 기자와 직원들이 냉소와 불신을 극복하고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좀 더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우리 안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선순환이 가능할 거라고 믿습니다.

이 보고서를 쓰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 조직에는 선장이 아니라 지휘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장이나 지휘자나 탁월한 실력과 구성원들의 존중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어느 순간에는 부족한 능력이나마 키를 쥐고 단상에 올라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부족한 실력을 극복하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선의, 성실성으로 구성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구성원들에게 공유 가능한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제안하는 것, 조직 안에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십 수업에서 배운 중요한 키워드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저희 회사 시스템을 다시 정비해 보겠습니다. 한 학기 동안 수업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학교 과제로 썼던 글. 기록 차원에서 저장해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