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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엄격한 전통에 깃든 창조적인 파격.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27, 2007

BMW의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학교를 나온 뱅글이 BMW의 수석 디자이너를 맡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자존심이라고 부를만한 BMW에 미국인 수석 디자이너라니 이게 웬 말인가. 가뜩이나 뱅글은 미국의 GM 출신이었다.

뱅글이 BMW에 합류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전임 디자이너였던 클라우스 루테가 1992년 8월, 마약 중독자였던 그의 아들을 칼로 찔러 죽이지 않았다면 크리스 뱅글이 BMW와 인연을 맺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루테는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갔고 BMW는 2년 동안 수석 디자이너를 공석으로 비워뒀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루테는 1986년형 7시리즈와 1990년형 3시리즈, 1995년형 5시리즈 등 대표적인 BMW 스타일을 만들어 낸 일등 공신이었다. 그의 자리가 공석으로 비어있었던 건 그를 대신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구개발센터에서 외장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보이케 보이에르는 그 무렵을 이렇게 회상한다.

“루테가 나가고 난 뒤 우리는 수석 디자이너 없이 2년 동안 일했습니다. 리더가 없으니 방향을 잡지 못했고 우리 디자인 팀은 연구개발센터의 위계 서열에서 맨 밑바닥으로 떨어졌죠. 회의 때면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들 우리를 자동차 스케치나 하는 사람들로 아는 분위기였어요.”

당연히 그 무렵 BMW의 디자인은 최악이었다. 독일의 한 자동차 전문 잡지는 “길이만 다른 똑같은 소시지”라고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보이에르는 다시 회상한다. “신차 발표회를 하고 나면 경쟁 회사의 친구들이 묻곤 했어요. ‘겨우 이거야? 도대체 당신들은 하루 종일 뭘 하는 거야?’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을 때마다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BMW가 왜 하필 뱅글을 선택했는지 구체적인 내막은 알려진 바 없다. 뱅글은 캘리포니아아트센터를 졸업하고 GM을 거쳐 이탈리아의 피아트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을 걸고 만든 자동차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독일 언론에서는 그를 ‘알려지지 않은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때가 1994년 10월이었다.

뱅글의 역할은 조직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불어넣는 것과 다른 팀과의 유기적인 협업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뱅글은 디자인 팀의 의사소통 구조를 확립하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 뱅글은 좋은 디자인은 좋은 선택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무리 하찮은 아이디어라도 공유하고 함께 토론하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뱅글이 합류한 뒤 BMW는 심각한 구조조정을 치러야 했다. 경영 부실로 골치를 썩혔던 자회사 로버를 분할 매각한 때가 1999년, 그 과정에서 사장이었던 볼프강 라이츨레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라이츨레는 자유분방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뱅글과 사사건건 부딪혔는데 그런 라이츨레의 퇴장은 뱅글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다.

뱅글이 2001년형 X쿠페와 2002년형 7시리즈를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변화가 있었다. 뱅글이 내놓은 새로운 BMW는 탄탄하게 각이 진 과거의 BMW와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부드럽게 빠지는 유선형 곡면에 이른바 뱅글의 엉덩이라고 부르는 펑퍼짐한 뒷모습은 과연 이 자동차가 BMW인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옆으로 쭉 찢어져 어딘가 우울한 인상을 주는 헤드라이트나 날렵하다기 보다는 뭉개진 듯한 느낌의 후드 디자인도 전통적인 BMW 애호가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BMW의 전통적인 디자인이라고는 키드니 그릴을 빼고는 남아있지 않았다. 키드니는 콩팥 모양이라는 뜻이고 그릴은 통풍구의 격자를 말한다. 키드니 그릴도 과거의 디자인과는 느낌이 달랐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천은 노골적으로 7시리즈를 비난했다. “이 차가 못 생겼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폭스바겐의 수석 디자이너 하르무트 바르쿠스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 철판 덩어리”라고 혹평을 쏟아냈다. 라이츨레는 X쿠페를 보고 “내가 계속 있었으면 뱅글이 이렇게 날뛰지 못하도록 잡아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BMW 애호가들의 반응도 격렬하게 찬반으로 갈렸다. 혁신적인 디자인이라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절반이라면 BMW의 전통을 파괴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했다. 온라인에서는 뱅글이 BMW를 더 망치지 못하도록 그를 해고해야 한다는 서명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뱅글이 경쟁업체에서 파견한 스파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돌았다.

뱅글은 이런 비난에 꿋꿋이 맞섰고 BMW의 경영진들도 그런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저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을 따라하지 않습니다. BMW의 과거 모델들 역시 굳이 따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파격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뱅글의 7시리즈는 출시 이후 38개월 동안 16만대가 팔려나갔다. 7시리즈 가운데서는 최고 기록이었고 특히 미국과 캐나다에서 판매가 크게 늘어났다. 뱅글은 “최종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선택”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7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팔렸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직후 의전 차량을 벤츠에서 BMW 7시리즈인 760Li로 바꿨다.

뱅글은 1시리즈와 2시리즈를 새로 개발한 것을 비롯해 2004년에는 6시리즈의 새 모델을 출시했고 쿠페 스타일의 Z4와 Z8,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으로 X3와 X5를 개발하는 등 공격적으로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그때마다 BMW의 전통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매출은 꾸준히 늘어났다.

뱅글은 2004년에 디자인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뱅글은 2005년 4월 서울 모터쇼에 참석한 뱅글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디자인은 좋은데 판매는 실패했다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판매도 디자인의 책임입니다. 디자이너는 생산과 광고, 마케팅까지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뱅글 이전에 BMW는 BMW만의 독특한 디자인이 있었다. 이를테면 키드니 그릴이나 강렬한 직선 등이 BMW만의 개성이었다면 뱅글은 이런 전통에 굳이 목을 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이덴티티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아이덴티티를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굳이 과거의 아이덴티티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BMW는 전통을 고집하기 보다는 혁신을 선택했고 파격적이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처럼 유행을 추종하기 보다는 유행을 선도하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여전히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그만큼 새로운 마니아들을 만들어 냈다. 뱅글의 디자인은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BMW는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바이에른의 중심지 뮌헨에서 항공기 엔진 회사에서 출발했다. BMW는 바이에리쉐 모토렌 베르케(Bayerishe Motoren Werke)의 줄임말이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전쟁무기를 만들 수 없게 되면서 1928년부터 자동차 제조업체로 변신한다. 키드니 그릴을 장착한 303 모델이 처음 나온 것은 1933년이었다.

BMW의 매력은 고속 주행에서 돋보인다. 속도를 높여도 차체가 흔들리지 않고 핸들링이 부드럽다. BMW의 라인업은 스포티 세단 3시리즈와 어퍼미들 설룬 5시리즈, 그리고 대형 프레스티지 7시리즈, 고급 스포츠 쿠페 8시리즈로 구성돼 있다. 가격은 3시리즈가 4520만~7730만원, 5시리즈가 6520만~9990만원, 7시리즈가 1억7150만~2억6410만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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