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문(revolving door) 현상은 공직자가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을 오가면서 자신이 몸담았던 부처와 관련 있는 기업이나 업계를 대변하는 이익단체의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들 수 있다. 그는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시작해 하원의원과 공화당 원내총무를 거쳐 국방부 장관까지 지내다가 1995년 석유시추회사인 할리버튼의 최고 경영자로 옮겨간다. 그러다가 2001년부터 부통령으로 다시 정치권에 복귀했다. 주목할 부분은 체니가 할리버튼에 재직했을 당시의 역할이다. 체니는 이 기간 동안 엄청난 규모의 정부 사업을 할리버튼에 안겨줬다. 할리버튼은 이라크 재건사업과 아프가니스탄 병참기지 건설에서 엄청난 이익을 챙긴 바 있다. 우리나라 평택 미군기지 사업에도 관여하고 있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부장관도 대표적인 회전문 현상의 사례로 꼽힌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인 그는 재무부장관을 거쳐 시티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재무부장관 시절 금융 업계의 이해를 대변해 겸업 금지 조항을 해결하는 등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단행했다.

미국은 로비공개법을 시행해 로비스트를 관련 정부기관에 등록하도록 하고 로비 활동의 성격과 목적, 보수 등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등록된 로비스트는 2만 명을 웃돈다. 정치인과 관료 출신과 변호사들이 많다. 조지 미첼 전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를 포함해 현재 로비스트로 등록돼 있는 전직 의원만 138명이나 된다. 그러나 등록하지 않고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정치인과 관료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직자 윤리법에 퇴직 전 3년간 일해 왔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 사기업체나 유관 협회에 퇴직 후 2년간은 취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경우는 예외로 적용돼 정작 취업 제한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특히 법률회사의 경우는 아예 적용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공직자 윤리법이 합법적인 낙하산 인사 절차로 자리잡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13일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서동원 부위원장 역시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공정위 독점국장까지 지내다가 그만두고 김앤장법률사무소로 옮겨갔다. 독점을 감독하고 공정 경쟁을 감시하던 업무를 하다가 대기업을 핵심 의뢰인으로 영업하는 국내 최대의 법률회사로 옮겨갔다가 다시 공정위의 2인자 자리를 꿰차고 돌아온 것이다.

김앤장과 공정위가 독점문제로 벌이고 있는 소송이 한두 건이 아니라는 사실만 돌아봐도 서부 위원장의 인사는 문제가 많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운영위원은 최근 펴낸 ‘법률사무소 김앤장’에서 공정위 핵심 관료들이 민간근무 휴직제도를 활용, 김앤장에 취업, 거액 연봉을 받으면서 법률 자문을 해주다가 다시 복귀하는 사례를 고발한 바 있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 감독하던 공직자들이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을 수임하는 로펌에 취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김앤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퇴직 관료는 지난해 8월 기준으로 국세청 출신 22명, 재정경제부 9명, 공정위 7명, 산업자원부 6명, 관세청 5명, 노동부 3명, 청와대 3명, 보건복지부 2명, 감사원 2명, 그리고 외교통상부 국무조정실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출신이 각각 1명씩이다. 이들은 관료 재직시절 얻었던 정보와 인맥을 김&장이라는 법률회사의 이해를 대변하는데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장 출신 공정위 부위원장에 대해 세간의 평가가 부정적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서 부위원장 뿐만 아니라 가장 대표적으로는 한승수 국무총리를 빼놓을 수 없다. 한 총리는 2004년 6월부터 최근까지 김앤장의 법률 고문으로 일해왔다. 김희선 국정원 2차장 역시 검찰을 그만두고 최근까지 김앤장에서 일했다. 박인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도 김앤장 출신이다. 과연 이들이 김앤장의 이해관계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런데 중앙일보는 14일 E2면에서 서 부위원장을 <민간 경험 쌓은 독점 정책 전문가>라고 평가했다. 서 부위원장은 “기업의 입장에서 불편함이 없는지 따져보고 인수위에서 마련한 규제개혁 계획을 차질없이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시장 경제를 강조하는 위원장에 기업의 편에 서서 공정거래 사건을 맡았던 부위원장까지 가세한 만큼 앞으로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대기업 규제를 푸는데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중앙일보가 지적한 것처럼 서 부위원장은 과거 공정위 시절 마이크로소프트 독점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중앙일보는 그러나 김앤장이 MS의 법률 대리인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서 부위원장은 2006년 2월 24일 MS 사건의 주심을 맡아 324억9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MS는 공정위 판결에 불복,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 소송의 법률대리인이 바로 김앤장이었다. 서 부위원장이 공정위를 떠난 날은 5월31일이었고 넉달 뒤인 9월25일 김앤장에 취업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은 “공정위 사건에서는 공정위의 조사 기법과 논리, 인맥을 잘 아는 공정위 출신들이 절대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지금 서 부위원장은 MS의 독점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과연 지금 서 부위원장이 김앤장의 하수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박상돈 통합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공정위 4급 이상 고위직 퇴직 공무원의 84%가 퇴직 후 국내 대기업과 국내 굴지의 로펌에 재취업했다. 전직 공정위 고위공무원 33명중 20명(60.6%)이 퇴직 후 1개월 이내에 대기업과 로펌에 재취업하였고, 75.8%에 해당하는 25명이 3개월 이내 재취업 했다.

조선일보는 B2면 <공정위 왕고참이 돌아왔다>에서 “외부의 시각으로 공정위를 개혁할 백 위원장 밑에 실무 능력이 탁월한 서 부위원장을 배치, 균형을 맞췄다”고 평가했다. 서 부위원장은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공정위를 퇴직해 민간에서 기업 규제를 당하는 입장에서 살펴보니 기업 규제 제도와 운영에 문제가 있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서 부위원장의 향후 행보가 김앤장에서의 경험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정부 요직에 김앤장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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