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스튜딩어 UNI-MEI 부본부장이 한국을 찾았다. 14일 서울 중구 소공동 프라자호텔 컨퍼런스룸에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UNI(유니, Union Network International)는 국제 사무직 노동조합 연맹으로 노동자들의 세계적 연대와 사회적 합의 체계 구축을 목표로 140개국, 1500개 노조 1200만명의 노조원을 대표하는 세계 최대의 국제 산별 노조다. 본부는 스위스 니온에 있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는 싱가포르에 지역 사무소를 두고 있다. 한국에는 UNI 한국협의회가 설립돼 있다.


UNI -MEI는 UNI 산하 4개 분과 가운데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예술 분야를 총괄하는 분과다. 요하네스 스튜딩어는 이 분과 부본부장(deputy director)을 맡고 있다. 이번 방문 목적은 일본과 한국의 언론 산업 현황을 조사하고 세계적 연대를 강화, 공동 대응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바쁜 일정 가운데 코스콤 등 비정규직 노조와 알리안츠생명 노조 등 파업 현장을 찾았고 전국언론노조와도 면담을 가졌다. 그는 특히 한국 언론 산업의 독과점 문제와 방통융합 시대가 가져올 변화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 한국은 3대 보수성향의 신문이 전체 광고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다. 문제는 이들 신문이 모두 극우 보수 성향을 띄고 또 국민들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이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 반면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2개 신문은 생존에 위협을 받을 만큼 재무구조가 열악하다. 국내 언론 시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것으로 아는데 유럽의 경우와 비교해서 간단히 평가해 달라.
” 한국 언론의 보수 편향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유럽의 경우, 특히 내 고향인 독일이나 지금 살고 있는 벨기에의 경우 보수와 진보 성향의 언론이 대등한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국민들도 두 종류의 신문을 모두 읽는 경우가 많다. 기업 광고도 균등하게 배분된다. 보수나 진보나 기업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광고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없다.”

–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신문 시장 자체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광고 규모도 줄고 실시간 인터넷 뉴스나 무료 신문의 범람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독자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종이 신문의 미래는 없다는 성급한 진단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온라인 광고 시장이 커지면서 전통적인 종이신문의 광고가 줄어든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터넷은 오히려 기회라고 본다. 나는 슈피겔을 애독하는데 독일을 떠나 있지만 인터넷 덕분에 세계 어디에서나 슈피겔의 최신 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종이 신문 시장은 분명히 위축되고 있지만 그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온라인 광고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슈피겔 역시 온라인 광고 비중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 한국에서는 신문사들이 포털 사이트에 종속되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다. 온라인 광고가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 포털 사이트에 집중되고 있고 신문사들은 광고 시장의 축소와 독자의 이탈로 이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 벨기에에서는 포털 사이트와 신문사 사이에 저작권 사용료 문제를 놓고 소송이 있었는데 법원에서 포털 사이트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우리는 발행인은 아니지만 국제 기자협회(IFJ)의 입장을 지지한다. 저널리즘의 지식재산권은 보호받아야 하고 이를 이용하는 포털 사이트는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온라인 등에서 재사용 문제다.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지만 이제 전통적인 방송 송출이나 DVD 판매 뿐만 아니라 P2P나 온라인 다운로드, 스트리밍 송출 등과 관련해 저작권 사용료의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신문산업 노동자들도 온라인에서의 저작권 사용료 배분 문제를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한국은 무료신문 때문에 종이신문이 큰 타격을 받았다. 유럽의 경우도 메트로 같은 무료문의 범람이 위협이 되는가.
“벨기에에서는 아침 출근 길에 지하철을 타면 10명 가운데 5~6명 정도는 신문을 보고 1~2명은 메트로나 다른 무료신문을 본다. 그리고 3~4명은 모바일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본다. 무료 신문 가운데서는 메트로를 가장 많이 보지만 사실 보는 사람이 한국처럼 많지 않다. 게다가 새로운 무료신문이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메트로의 경쟁 주자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대부분 실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한국에서 일간신문의 정기 구독료는 월 1만2천원인데 실제 제작원가는 1만8천원을 웃돈다. 6천원씩 손해를 보면서 팔고 독자 기반을 활용해 기업 광고를 받아 손실을 메우고 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기업에 의존도가 높고 자본 시장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려운 문제다. 원론적인 해법을 이야기하자면 결국 차별화된 기사를 만들어 내고 독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균형감 있는 언론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리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독자들의 의식이 성숙하려면 정치적 투쟁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 한국에서는 기업이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기사를 쓰는 언론에 광고를 주지 않고 결국 광고를 통해 언론을 장악하는 경우가 흔하다. 유럽은 어떤가.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광고를 주느냐 안 주느냐 때문에 쓰고 싶은 기사를 안 쓰지는 않는다. 지난해 소시에떼제네럴의 금융사기 사건이 터졌을 때 이 은행은 오히려 광고 물량을 늘렸다. 물론 기업의 이익이 줄면 광고를 줄이는 경우도 있지만 광고를 주느냐 안 주느냐를 놓고 정치적 게임을 하는 일은 없다. 자신들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 언론사에만 광고를 안 준다? 그건 정말 상식적이지 않다. 사회적으로도 용납되지 않을 것 같다. 광고 에이전시 입장에서도 굳이 편파적일 이유가 없다. 모든 언론사에 균형 있게 광고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는 올해부터 IPTV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방송과 통신 시장의 경계가 무너지고 신문과 방송의 겸업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본의 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고 자본 확보에 뒤쳐진 언론은 변화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나 변화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인지, 변화를 수용한다면 과연 자본의 언론 지배를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독일에서는 스프링거라는 미디어그룹이 상업방송을 인수하려고 했는데 승인을 받지 못했다. 많은 나라들이 한국과 비슷한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인쇄 매체와 방송 매체, 온라인, 통신까지 모두 장악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 신문과 방송의 겸영 등 통합이 시대의 대세라면 그럴수록 더 규제가 필요하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2, 3개 회사가 사회의 언로를 장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이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민주주의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거라고 경고하고 싶다.”

– 변화의 큰 방향을 인정한다면, 결국 언론 산업도 거대 자본과 손을 잡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영세한 언론사들은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쉽지 않은 문제다. 자본의 언론 지배와 언론 산업의 독과점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특히 수익 구조와 독자 기반이 취약하고 사회적으로 보수 편향도 심각하다. 이에 맞서기 위해 진보성향의 언론을 모아 통합하고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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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인터뷰내용을 찬찬히 보고 있으니 먼 훗날 종이신문을 인터넷이 흡수해버리면 지금과 같은 보수언론들의 횡포가 다소 약화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2. 종이가 되었건 인터넷이 되었건 제대로된 언론이 나와야 겠죠. 요즘 떴던 백골단(의 부활)이라는 단어를 3대 신문사에서 검색해보니 검색되는 것이 거의 전무하더군요. 정부에 누가될만한 기사는 다루지 않더군요. 이런 언론사의 문제를 어느 블로거님이 다루었던 기억이 납니다. 노무현 정권 때 국민의 알권리를 외치던 기자들이 새로운 정권과 함께 생각도 새롭게 무장했나 봅니다. 포털 기사도 기업이 운영하는 이상 정의보다는 권력의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정환님의 말씀대로 탄탄한 수익모델을 확보한 진보성향의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지켜주길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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