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제 도입을 놓고 노동조합과 갈등을 빚던 알리안츠생명이 지난 21일 파업에 동참한 지점장 167명에게 회사 복귀 명령을 내리고 불응할 경우 해고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쟁점은 지점장이라는 직책을 사용자로 볼 것이냐, 노동자로 볼 것이냐 하는 부분.
만약 이들이 노동자라면 이들은 법에 따라 노조를 결성할 권리(단결권)가 있고 회사측에 교섭을 요구할 권리(단체교섭권)도 있고 교섭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필요하다면 쟁의행위를 할 권리(단체행동권)도 있다.
노조는 회사측이 전직원을 실적에 따라 5등급으로 구분하고 연봉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노조의 우려는 성과급을 차등화 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 총액을 그대로 두고 하위 등급의 연봉을 삭감해 퇴사를 유도하는 구조조정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것. 노조는 노조의 동의 없는 일방적인 임금체계 변경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사실 제3자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노조와 회사측이 풀어야 할 문제다. 노조는 파업을 할 권리가 있고 회사측은 성실히 교섭에 임할 의무가 있다. 이런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백년 자본주의의 경험으로 만든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알리안츠 노조의 파업은 다른 여느 노조의 파업처럼 법으로 보호돼야 한다. 지점장을 사용자로 볼 것이냐 노동자로 볼 것이냐와 별개로 일단 알리안츠 노조의 파업은 합법이다. 그럼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서 지점장은 과연 노조에 가입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이번에 파업에 가담한 지점장은 전체 지점장 267명 가운데 60% 정도.
노조법에는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는 노조에 가입할 자격이 없다”는 규정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 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인사와 급여, 후생, 노무관리 등 노동 조건을 결정하고 업무상 명령이나 지휘·감독을 하는 등의 사항에 대해 사업주로부터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 받는 자를 말한다.
최근 판례에서는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의 해당 여부는 사업주로부터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 받고 있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이 판례는 “그 어느 것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 “비조합원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사업의 종류나 성격에 따라 특정 지위, 특정 부서, 또는 특정 직종에 있는 자가 노조에 가입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노동조합의 독립성 내지 자주성을 유지함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 지의 여부를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노조법에서 사용자의 노조 가입을 배제하는 것은 노조의 자주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노조 가입 범위를 노조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하고 사용자가 이의제기를 하였다는 이유로 해당자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하거나 단체교섭을 거부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알리안츠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단체협약에 지점장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대법원 판례에 “단체협약으로 특정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가입을 제한하는 단체협약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조합원 범위 문제는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당해 노조 규약에 규정되는 것이지 성질상 노사의 자율적 합의사항을 명시하는 단체협약에 규정될 사항이 아니라는 것.
결국 지점장들이 자발적으로 노조 가입을 신청했고 노조가 이를 받아들였다면 노조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단체협약으로 이들을 노조원이 아니라고 규정하거나 이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일부 언론 보도는 매우 편파적이고 기본권 침해의 소지마저 있다.
동아일보는 27일 사설에서 “어느 모로 보나 지점장들의 파업은 불법이고 설득할 단계도 넘어섰다”며 “정부는 ‘법대로’를 강조했어야 옳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앞으로 다른 기업들도 불법 파업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경제 살리기는 고사하고 우리 사회는 다시 불법폭력시위가 판을 친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의 주장은 명백한 월권이다.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노조의 파업은 법으로 보장되는 권리다. 그리고 지점장의 노조 가입 여부는 동아일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동아일보는 “파업 때문에 300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는 회사측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설령 파업 때문에 손실을 입었더라도 이는 회사측이 감당해야 할 몫이고 이 역시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들의 권리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지점장들을 설득시켜 돌아오도록 하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서도 일부 언론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설득이 아니라 단호하게 해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일보는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의 발언이) 법과 원칙을 훼손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일보는 “법과 원칙의 준수를 천명해 온 대통령이 관련 사안에 대해 불필요한 발언을 한 것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알리안츠 노조는 이 대통령이 자신들의 편을 들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대통령 발언의 취지를 착각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노조원 자격이 없어 법상 보호를 받지 못하고 불이익 처분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이런 사실을 인식시켜 돌아오게 하려는 의미였다”는 이야기다.
조 선일보는 “법과 원칙에 따라 중징계 하겠다며 노조를 압박해온 회사측은 맥이 빠진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조선일보는 또 “노조 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을 지켜야 외국인 투자가 늘어날 텐데 대통령은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려면 불법 참여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정문국 알리안츠 사장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경제는 “이번 파업 사태가 시기적으로 매우 좋지 않다”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의 말을 비중있게 인용했다. 이 상무는 “외국인의 직접 투자를 가로 막는 첫째 장애요인이 노사문제와 고임금”이라며 “고임금을 받는 금융회사에서 더욱이 외국계 기업에서 터져나온 대규모 노사 분쟁은 외자유치를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상무의 발언은 노동운동에 대한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천박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외자유치를 위해 파업을 자제하라는 주장도 어이가 없지만 고임금을 이유로 감정적 반발을 유도하는 고질적인 수법 역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고임금을 받든 저임금을 받든 노동자들은 누구나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회사측과 교섭하고 필요하다면 파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이런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 줘야 한다. 언론이 나서서 불법 파업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제 넘은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