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는 그동안 재벌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거론돼 왔다. 재벌개혁운동을 진두지휘해 왔던 참여연대나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도 지주회사로 전환에 성공한 LG그룹을 모범사례로 평가했다. 지주회사가 지배구조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주산업대 송원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송 교수가 최근 펴낸 ‘재벌 개혁의 현실과 대안 찾기’에 따르면 LG그룹의 경우 지주회사 전환 이후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더욱 확대되고 여전히 부당 내부거래가 끊이지 않는 등 숱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송 교수는 “지주회사 전환이 오히려 재벌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구본무 회장 등 LG 총수 일가는 추가 자금 투입 없이 지주회사 (주)LG의 지분 42.8%(2003년 3월 기준)를 확보했다. 구 회장 일가는 지주회사 전환 이전에는 LG화학 지분 5.8%와 LG전자 지분 6.6%, LG홈쇼핑 지분 47.8%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주회사 전환 이후 순환출자 구조는 해소됐지만 여전히 (주)LG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게 됐다.
LG는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유상증자를 통한 공개매수를 활용했다. 자회사 주식을 공개 매수하면서 (주)LG의 신주를 발행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를테면 LG전자 지분을 시중 가격보다 비싸게 (주)LG에 팔고 그 돈으로 주가가 낮아진 (주)LG의 신주를 사들인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LG전자 대주주의 지분비율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주)LG로 최종 합병하기 이전 각각 전자와 화학 부문 지주회사인 LGEI와 LGCI에 대한 구 회장 일가의 지분은 8.8%와 9.6%씩이었는데 지주회사 출범 이후 36.7%와 39.2%로 늘어났고 합병 이후 42.8%까지 늘어났다. 송 교수는 “소액 자본으로 다수의 기업을 손쉽게 지배하는 지주회사의 단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LG와 GS, LS그룹 등이 계열 분리하는 과정에서 부당 내부거래 등으로 총수 일가가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구 회장 일가는 1999년 4월 LG홈쇼핑 주식을 계열사인 LG정보통신 등으로부터 헐값에 사들여 지주회사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다. 2000년 4월에는 LG유통 등을 LG화학에 비싸게 내다팔기도 했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이 터졌을 때 LG 계열사들의 움직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LG의 대주주와 계열사들이 공동 출자하는 방식이었지만 (주)LG의 출자 자금은 (주)LG가 한국전기초자 등의 보유 지분을 계열사들에 넘겨 마련했다. 송 교수는 “부실 계열사 지원에 자회사를 동원했고 자회사의 이익을 탈취했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LG의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 “출자 관계가 정리된 것만으로 지배구조가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고 부당 내부거래가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든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재벌 구조의 문제는 의결권보다 더 많은 지배력을 행사하는데서 비롯하는데 지주회사 전환 이후 이런 지배력이 더욱 강화됐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비슷한 현상이 LG뿐만 아니라 이미 지주회사 전환에 성공한 SK와 금호아시아나 등에서도 발견되고 지주회사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한화나 롯데, 코오롱, 동양 등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데 있다. 실제로 SK(주)는 지난해 10월 SK에너지에 대한 공개매수와 지신주 발행을 통해 최 회장의 지분 비율을 크게 늘려주기도 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미래에셋증권이 펴낸 지주회사 관련 보고서도 주목할 만하다. 김경모 연구원은 “프리미엄을 즐겨라”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지주회사 제도가 향후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의 대표적 지배구조로 자리 잡으면서 지금까지 기업 영역이 담당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 연구원은 “이 과정에서 지주회사를 통한 대주주의 지배력과 대기업의 자본력 집중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이런 부분이 바로 지주회사의 가치평가에 있어서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주주의 이익 극대화가 소액 주주들의 이익과 연결되는 지점에 투자를 하라는 이야기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주회사 제도를 주주 자본주의의 가장 진화한 단계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실적이 좋지 않은 계열사를 과감하게 구조조정하거나 인수합병하고 그 과정에서 계열사의 노동자들과 마찰을 빚는 과정도 숱하게 벌어진다. 결국 핵심은 주주 가치 극대화의 논리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볼 것이냐다.
홍 연구위원은 특히 기업의 금융화 현상에 주목한다. “금융업에서 부가 가치를 얻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기업 행위가 시장 자산 가치의 극대화라고 하는 하나의 원리에 의해 좌우되는 현상”을 말한다. 홍 연구위원은 “이런 형태의 금융화는 대주주의 주머니를 불려주겠지만 수많은 관련 이해 당사자들의 부의 이전에서 비롯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