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다이아몬드는 신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놓고 격렬한 내전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군대에 떠밀려 나와 휴일도 없이 하루 두 컵의 쌀과 50센트의 돈을 받으면서 다이아몬드를 캐낸다.


이렇게 캐낸 다이아몬드 원석은 밀반출돼서 런던을 거쳐 인도의 세공공장으로 넘어가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엄청난 가격에 팔려나간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반군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지만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굶주림과 전쟁 뿐이다. 다이아몬드를 팔아서 번 돈으로 정부와 반군은 무기를 사들이고 상대편을 향해 끊임없이 살육을 벌인다.

똑같은 일이 콩고에서도 벌어진다. 이곳에서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콜탄이라는 금속이 탐욕의 대상이다. 콜탄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전해콘덴서에 쓰이는 탄탈을 만드는 원료인데 콩고는 그 주요 원산지 가운데 하나다. 특히 콩고 동부지역에 콜탄 광산이 몰려있는데 이 때문에 이곳을 서로 독차지하려고 정부와 반군이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다.

UN 보고서에 따르면 이곳 광산에서 밀반출 된 콜탄은 의심스러운 경로로 유럽에 반출되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는 무기가 가득 실려 있다. 정부와 반군은 광산을 차지하려고 외국 용병까지 끌어들였고 덕분에 이곳에는 루안다와 짐바브웨 등 주변 7개 국가의 군대가 주둔하면서 호시탐탐 이 콜탄 광산을 독차지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최근 출간된 ‘나쁜 기업’에는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삼성전자가 콩고 정부나 반군에게 콜탄을 구매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이 끔찍한 전쟁을 배후 지원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계적으로 휴대전화와 휴대용 게임기 등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콜탄의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고 한때는 물량 부족 사태를 빚기도 했다.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글로벌 기업의 맹목적인 이윤 추구를 추적 비판하는 르포 기사들로 구성돼 있다. 독일의 르포 작가 한스 바이스 등이 쓴 이 책은 특히 제3세계의 독재 부패정권과 글로벌 기업의 유착관계의 실상을 파헤쳐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이 책의 저자들이 콩고의 콜탄 중개상이라고 속이고 콜탄을 납품하겠다는 가짜 제안서를 삼성전자를 비롯해 12개 전자회사에 보냈더니 첫 답신을 보낸 곳이 바로 삼성전자였다는 대목이다. 이 책에는 삼성전자의 금속 무역을 담당하는 직원이 이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그대로 공개돼 있다.

이 직원은 이미 콩고에서 구리를 들여온 경험이 있어서 지역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구매 의사를 밝혔다. 이 직원은 반군의 통제와 감시가 심하다는 지적에 “걱정하지 말라, 모두 삼성 자체 수요로 활용될 것이고 시장에 다시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 책의 내용과 관련,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전자 홍보팀 이광윤 차장은 “이 책이 독일에서 출간된 2001년 이후 세계적으로 문제제기가 확산됐고 지금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어느 기업도 콩고산 콜탄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게다가 삼성전자가 1차 원료인 콜탄을 직접 구매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콜탄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은 콩고 말고도 호주나 브라질 등 여러 곳이 있다”면서 “아무리 가격이 싸다고 해도 국제 사회와 비정부기구(NGO)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굳이 콩고산 콜탄을 쓸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협력업체들에게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원료를 쓰지 않도록 원산지 증명을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콜탄을 수입해서 여러 전자제품 회사에 공급하는 슈타르크라는 회사 관계자는 이 책의 저자들과 인터뷰에서 콜탄의 원산지에 대해 함구했다. 그러나 독일 일간지 ‘타게스차이퉁’은 이 회사의 관계회사인 바이엘 관계자의 말을 인용, 콩고의 호전적 정당들이 마피아를 통해 콜탄을 수출해 자금을 융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한 바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중간 거래상을 가장해 삼성전자 등에 거짓 거래를 알선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들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상당수 전자제품 회사들이 콩고산 콜탄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다양한 추정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결정적인 근거는 없지만 바이엘의 경우는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바이엘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콜탄의 채굴로 그곳의 민간인들은 도움을 받고 있다. 우리의 거래로 인해 수년전부터 계획만 있을 뿐 시행하지 못하고 있던 사회 기반의 발전을 위한 조치가 보다 빨리 추진될 수 있었다.”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거나 총을 들고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이 관계자는 언급을 꺼렸다.

이 책이 전하는 콩고의 현실은 참혹하다. “굴 속에 앉아있으면 지반이 무너지지나 않을까 내내 불안해요. 항상 군인의 감시를 받든가 민병대의 감시를 받아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밀어내느냐에 따라 감시자만 달라질 뿐이죠. 우리한테는 어느 쪽이 그곳을 차지하든 별로 상관도 없답니다.” 광산에서 일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슈타르크 관계자의 이야기는 더 놀랍다. “상대가 반군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그건 나와 전혀 상관없는 문제죠. 아동 노동이요? 이건 아프리카에서는 전혀 다른 문젭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죠.” 한 사회기관 대표의 말도 주목된다. “콜탄으로는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 풍족하게 지냅니다. 모든 것이 마피아 경제의 루트로 들어가니까요.”

이 책의 저자들은 부록으로 첨부된 ‘나쁜 기업’들 목록에서 삼성전자가 콩고산 콜탄을 수입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이들의 거짓 거래에 큰 관심을 보였고 심지어 거래를 비밀에 부칠 것임을 보장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다시 지적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걸맞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단 삼성전자에 공식적인 추가 설명을 요청해둔 상태다. 읽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데 서평은 다음 기회에 다시 쓰기로.

나쁜 기업 / 한스 바이스 등 지음 / 손주희 옮김 / 프로메테우스 펴냄 /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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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1. 자원 확보를 위하여 기업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죠.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가 가격 경쟁력과 이어질 것이니까요…

    그나저나, 본문 내용중에
    “”이 관계자는 “게다가 삼성전자가 1차 원료인 콜탄을 직접 구매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와 정환님이 답변하신 내용과 조금 어긋나는데요,
    삼성전자가 직접 ‘콜탄’이라는 원료를 산다는 건지 안산다는 건지 조금 헷갈립니다.

  2. ‘누가 책임이 있는가’라는 점에 있어서 과연 1차 구입자인지, 가공을 담당하는 2차 구매자인지, 아니면 판매를 담당하는 제조업체인지, 그것도 아니면 알고도 구매하는 소비자인지는 다소 모호하고 복잡한 문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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