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이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것이 시장주의자들의 오래된 믿음이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 초기부터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오 이런 믿음에서다. 그런데 최근 하나대투증권에서 나온 한국전력공사 관련 보고서는 “민영화의 영향이 긍정적인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전력의 발전 효율성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민영화 혜택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주익찬 연구원은 “민영화의 목적은 경쟁체제 도입으로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요금을 인하하고 국민 편익을 높이는 것인데 한국전력의 전기요금은 초기 개발도상국을 제외하면 해외 업체들 대비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주 연구원은 “2003년 이후 해외 주요 전력회사들 전기요금이 50% 이상 오르는 동안 우리나라 한국전력은 4.4% 오르는데 그쳤다”고 덧붙였다. 1인당 국내총생산 대비 전기요금도 4% 수준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주 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전력의 비용 효율성이나 인건비, 판매관리비 등도 해외 업체들에 비교해 높은 편이 아니다. 해외 여러 나라들이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으로 효율을 높이고 가격 인하를 모색하고 있는 것과 애초에 상황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주 연구원은 “가뜩이나 국제 유가 인상으로 이익률이 줄어들고 있는데 정부 규제로 전기요금을 묶어두고 있는 상황인데 민영화를 하게 되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스산업 민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5년부터 단계적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했던 일본의 가스산업의 경우 민영화 이후 오히려 영업이익률이 비슷하거나 올라갔다. 주 연구원은 “정부의 규제를 받는 독점적 시장구조보다는 가격은 자율화됐으나 과점인 시장구조가 기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 연구원은 “구조개편 이후 이익률이 상승한다면 가스가격 하락으로 국민 편익을 증대한다는 정부 목표와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충분히 효율적인 경영을 하고 있고 민영화 이후에도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지 않다면 굳이 이들 공기업을 민영화해야할 이유가 무엇일까. 정부는 국책은행 임직원들의 높은 연봉과 방만한 경영을 문제 삼으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대대적인 인원 감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주장을 증명이라도 하듯 검찰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공기업을 겨냥,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가기도 했다.
정부의 진짜 속셈은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들어오게 된다는 60조원의 매각 대금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곽승준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은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민영화 및 자산 매각 수입이 5∼7년간 60조 원에 이를 것”이라면서 “이를 중소기업 지원과 젊은층 일자리 마련, 교육 등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승흡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대규모 감세로 인해 부족해진 세수를 공기업 매각으로 메우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정호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교육선전실장은 “공기업 민영화는 과거 대한석유공사(SK)와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 등 민영화처럼 재벌 대기업들 먹거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실장은 “지식경제부 공무원들은 무분별한 민영화가 가져올 폐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민영화라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조세연구원이 지난해 기획예산처 연구용역을 받아 펴낸 공기업 민영화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이래 민영화된 포스코와 KT 등 7개 공기업의 민영화 성과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 공기업에서 생산성과 자본구조는 크게 개선됐지만 성장성은 큰 변화가 없고 고용은 오히려 감소했다. 또한 장기투자와 취약계층 지원, 공정거래 등 공기업 본연의 공공성 측면도 크게 후퇴됐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 교수는 최근 공공연맹 주최 토론회에서 “공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매각이나 민영화 등의 하드웨어적 방식보다 진정성 있는 경영의 투명화와 민주화란 소프트웨어 방식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싱가포르 테마섹 모델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지주회사란 조직의 특성이 아니라 다국적 투자기업으로서의 경영의 전문성과 자율성”이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투자자와 협력 생산자들이 수익성 구조와 경영과정 등을 함께 관리하는 사회적 거버넌스의 구축을 공기업 민영화의 대안으로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시민사회의 참여와 감시를 보장하고 이를 위해 공공참여이사회를 설립할 것, 통상적인 기업회계방식 대신 공공적 부가가치를 계량화하고 반영하는 사회공공회계를 도입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