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됐던 지난달 2일, 누구도 10대 중고등학생들이 1만5천명이나 몰려들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어디에서 듣고 쏟아져 나온 것일까.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언론이 촛불집회를 일과성 이벤트로 여겼고 이처럼 국민적 저항으로 확산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미디어오늘이 인터넷 시장조사업체인 코리안클릭과 함께 광우병과 촛불시위 관련 이슈가 온라인에서 생성·확산되는 과정을 분석한 결과 첫 집회가 열리기 2주 전인 4월18일 무렵부터 광우병에 대한 이슈가 온라인에서 떠돌기 시작해 30일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슈가 절정을 이룬 때는 5월10일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이슈가 된 콘텐츠들이 언론사 뉴스보다는 개인 블로그의 포스트나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물인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5월9일 이후 주말을 낀 석가탄신일 연휴와 맞물려 대부분 언론의 관심이 광우병이나 촛불집회 관련 이슈에서 멀어진 반면 이른바 블로고스피어에서는 광우병 이슈가 꾸준히 확대재생산됐다.
위 그래프는 광우병(윗쪽)과 촛불집회 관련 이슈의 일별 추이. 빨간색 선이 블로그, 녹색선이 커뮤니티, 파란색 선이 언론사 뉴스 콘텐츠다. 광우병 이슈가 지고 촛불집회 이슈가 뜨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코리안클릭.
6만4천개에 이르는 광우병 관련 이슈 가운데 블로그 포스트가 42%,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물이 44%로 나타났고 뉴스 콘텐츠는 13%에 그친 것도 주목된다. 하루 1개 이상의 이슈를 작성하는 사람이 70명 이상, 이들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블로거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체 이슈의 절반 이상을 1600명 정도가 작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리안클릭 이창렬 과장은 “지난 한달만 놓고 보면 개인 블로그가 이슈를 선도하고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이슈가 확산되고 뉴스가 이를 추종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5월 중순을 고비로 광우병 관련 이슈가 수그러든 반면 촛불집회가 대규모 거리시위로 확산된 24일 무렵부터 촛불집회 관련 이슈가 부쩍 늘어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5월3일부터 6월2일까지 한 달 동안 광우병 관련 이슈의 발원지로는 다음 아고라 토론방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고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과 네이버 토론방,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등이 뒤를 이었다. 뉴스 사이트로는 YTN과 연합뉴스가 포함됐고 언론사 독자 게시판 가운데서는 한겨레 토론마당이 유일하게 포함됐지만 비중은 크지 않았다.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4월 마지막주 다음 아고라의 순 방문자가 전주 대비 79.7%, 체류시간은 408.8%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다음 아고라는 “물만 마셔도 죽는다”는 등의 괴담의 온상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집회 행동전략과 주의사항 등이 올라왔고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의 구독 권유 운동이 벌어지는 등 적극적인 여론 수렴의 공간으로 작용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보관돼 있는 냉동창고의 주소와 민주노총의 쇠고기 반출 저지 계획이 이곳에서 공개됐고 경찰의 강제 진압을 희화화해 ‘닭장차 투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온 곳도 바로 이 곳이다. 아침마다 ‘조중동’의 왜곡 보도가 낱낱이 까발려졌고 한 네티즌은 직접 정보공개를 신청해 정부 기관의 조중동 구독 현황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른바 조중동에 대한 이슈 역시 5월 마지막주 무렵부터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언론비평 전문지인 미디어오늘도 일부 이슈의 발원지가 됐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이슈들이 다음 아고라에서 촉발돼 확산됐다. 최근 촛불집회 현장에서 조중동에 대한 감정적인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주류 언론이 신뢰성을 잃는 이유가 과도한 정파성 때문인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불신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 교수는 “블로그나 커뮤니티 사이트가 주류 언론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담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여론 선도자 그룹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교수에 따르면 이번 촛불집회의 주역이었던 10대는 월드컵을 겪으면서 광장의 문화를 경험했고 인터넷에 익숙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포털 뉴스 등을 자신의 미니홈피나 블로그로 퍼가거나 링크를 걸고 이를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다. 기성 세대들과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황 교수는 “정보의 채널이 잘게 쪼개져 분산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네트워크의 법칙에 따라 링크를 타고 넘으면서 유용한 콘텐츠가 선별되고 제곱의 비율로 확산된다”고 설명했다. “완전 공개경쟁시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블로그 포스트나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물이 주류 언론 못지 않은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는 “RSS나 트랙백 같은 새로운 인터넷 문화가 점과 점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 점들이 모이는 허브 사이트를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다. 이번 촛불집회 국면에서는 다음 아고라나 실시간 동영상 중계 사이트인 아프리카, 그리고 이른바 파워 블로거들이 그 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했다.
민 교수는 “촛불집회 참석자의 상당수가 단순히 집회에 참석하기 보다는 이를 기록하고 공유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사람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이런 소통의 욕망이 과거 영화 ‘디워’ 논쟁에서 보듯 대중에게 내재돼 있다고 본다. 언제라도 이슈만 터져나오면 공론의 장으로 뛰어나올 준비가 돼 있다는 이야기다.
현대원 서강대 언론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소수에 집중됐던 언론 권력이 다수의 시민들에게 분산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현 교수는 “이번 촛불집회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이제 시민들은 뉴스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직접 뉴스가 되고 뉴스를 생산하기도 하면서 주류 언론의 그늘을 밝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