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기상천외한 민심수습 대책을 내놓았다. 연간 급여 3600만 원 이하 급여 생활자와 종합소득금액 2400만 원 이하 자영업자들에게 최대 24만원씩 현금을 유가 환급금 명목으로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또 운송·물류사업자들과 농어민들에게도 경유 1리터에 1800원을 기준으로 가격 상승분의 50%를 보조해주기로 했다.


정부의 이런 파격적인 세금환급 대책은 최근 급등한 국제유가와 물가 부담을 덜어주려는 목적이지만 한 달 이상 꺼질줄 모르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관련, 날로 거세지는 국민들의 불만을 수습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세금환급 대책이 이미 올해 1월 미국에서 실시했다가 별 재미를 못 본, 검증되지 않은 정책이라는데 있다. 미국은 7월까지 1억3천만 명에게 1100억 달러를 뿌릴 계획이다. 1인당 600 달러에서 최대 1200 달러까지, 우리 돈으로는 최대 120만 원쯤 되는 셈이다. 그만큼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에 대한 의지가 강력하다는 반증인데 당초 예상과 달리 그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게 아직까지의 평가다.

4월 말 블룸버그통신과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공동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8%만 세금을 환급받은 돈으로 구매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3분의 1은 채무를 갚는데 쓰겠다고 답했고 나머지는 저축하겠다고 답했다. 간접적으로 소비를 늘리는 효과는 있겠지만 당장 추가 수요와 경기부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세금 환급이 시작된 뒤 지난달 말까지 6주 동안 미국 소매판매 지표는 단 한차례 늘었을 뿐이고 지난달 미국의 소비심리는 15년여 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은 2001년에도 대규모 감세와 추경예산 편성으로 전방위 경기부양정책을 펼쳤는데 정작 경기부양 효과는 크지 않았다. 1116억 달러의 감세와 550억 달러의 추경예산을 편성했는데 경기부양 효과는 1288억 달러에 그쳤다. 근본적으로 경기 불안심리를 해결하지 못하면 소비증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을 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세금환급 효과를 상쇄할 가능성이 크다. 월 2만원 수준으로 얼마나 효과를 보겠느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저소득 계층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보다는 수혜대상을 넓혀 돌아선 국민들 환심을 사려는 의도가 더 컸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연봉 3천만 원의 급여 생활자에게 월 2만 원은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지난달 기준 물가 상승률은 5%에 육박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환율급등에 따른 원화가치 하락이 10% 이상으로 물가상승을 부채질해왔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수출 대기업 밀어주기 정책이 무리한 환율인상과 내수부진으로 이어지고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마저 낳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무리한 구두개입으로 환율을 끌어올렸다가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뒤늦게 외환보유액을 풀어 환율을 끌어내리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그동안 노골적으로 한국은행에 금리인하를 요구해 왔는데 이는 자칫 치솟는 물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이번 대규모 세금환급은 이 정부에 최소한의 일관된 원칙마저도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여전히 경기부양에만 골몰하고 있을 뿐 내수침체와 물가급등이라는 딜레마를 풀 아무런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 언론의 반응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조선일보는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나치게 석유에 의존하는 산업구조와 수송체계를 바꾸는 에너지 소비구조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매일경제는 “재정을 약화시키는 포퓰리즘적 대책 보다는 국가 에너지 절약을 위한 근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보수·경제지들이 강한 불만을 표출한 반면, 한겨레가 “대기업과 성장 위주 정책을 펴 오던 이명박 정부가 국민 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데 재정을 쓰기로 한 것은 전향적 처방으로 평가된다”며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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