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르지 못하는… 기형적 고용관계가 만든 기형적 임금 체계.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지금 파업을 벌이고 있는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들은 대부분 10여년 전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파업을 앞두고 있는 건설기계노조 소속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멘트 회사들을 중심으로 화물 노동자들에게 트럭을 떠넘기고 개인 사업자로 전환시키는 일이 유행처럼 확산됐다. 박대규 건설운송노조 수석부위원장의 경우 1994년까지만 해도 월급 70만원에 상여금 400%를 받는 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런데 회사에서 회사 소유의 트럭을 사서 개인 사업자로 일하라고 제안해 왔다. 말이 제안이었지 거절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였고 그는 결국 퇴직금에 빚까지 얹어서 자신이 몰던 트럭을 5천만원에 샀다. 회사에서 친절하게 돈까지 빌려줬다.
그날부터 그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가 됐고 회사와는 고용계약이 아니라 도급계약을 맺었다. 첫 달에 그는 450만원을 벌었는데 기름 값과 보험료, 차 유지비와 수리비에 할부금까지 내고 나니 70만원 정도가 남았다. 월급 받던 때나 수입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수입은 그대로였지만 노동 조건은 크게 달라졌다. 회사에서 호출을 하면 한밤중이든 휴일이든 언제든지 달려 나가야 했다. 물론 야근수당이나 휴일근무수당 같은 것도 없었다. 기름 값이 올라도 회사에서는 운송료를 잘 올려주지 않았다.
회사에서 차에 압류를 걸어뒀기 때문에 다른 회사로 옮길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만 두려면 차 값을 한꺼번에 갚아야 했다. 그런데 7년에 걸쳐 차 값을 다 갚고 나니 처음부터 새 차가 아니었던데다 무리하기 굴리니 차가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1995년 이상인 차와는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새 차를 사든 중고를 사든 좀 더 신형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8천만원의 빚을 지고 중고차를 샀다. 지난 10년 동안 경유 가격이 6배가 올랐는데 운송료는 거의 제자리 걸음을 했고 이제는 오히려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 됐다.
이처럼 노동자면서도 개인 사업자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을 특수고용형태 근로종사자 또는 특수고용직이라고 부른다. 2006년 기준으로 이들의 평균 소득은 142만원으로 월급제나 시급제가 아닌 실적 성과급에 따른 수당과 수수료를 받으며 세금도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낸다. 사업주와는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탁계약서나 도급계약서를 쓴다. 특수고용직의 사회보험 적용비율은 정규직 노동자의 4분의 1 정도다.
골프장 경기보조원과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텔레마케터,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기사, 간병인, 방송작가, 신문판매원, 레미콘·덤프·화물·컨테이너 기사, 홍익회 매점 판매원, 수도·가스검침원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노동부 통계로 2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차량 운영에 따른 세금이나 공과금 등 비용과 위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길 수 있는데다 노조 설립을 원천 차단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도 당장 수입이 늘어나는 것 같은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켜 특수고용직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록 확산됐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화물 노동자들의 90% 이상이 위탁이나 수탁, 또는 지입제 형태로 일하고 있다. 지입제란 화물 노동자가 지입료를 납부하고 운송사업자에게 소속돼 물량을 배정받는 형태를 말한다. 개인사업자 입장에서는 물량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인데 덕분에 운송사업자들은 알선수수료 명목으로 운송료의 최대 10~30% 가량을 공제하고 지급한다. 그래서 하청에 재하청을 받는 방식으로 운송사업자를 두어군데 거치면 기름값을 대기에도 빠듯한 수준이 된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 관련 기사에는 이런 맥락이 모두 빠져있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있는데 정작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아무런 권리도 없다. 차가 고장 나면 자기 돈으로 고쳐야 하고 사고가 나도 산업재해 혜택도 받지 못한다. 가뜩이나 요즘처럼 기름 값이 오르면 고스란히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이들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처럼 온 나라의 물류를 통째로 멈추는 방식의 집단행동이 아니면 누구와도 협상 테이블조차 만들지 못한다. 핵심은 단순히 운송료를 올려받는데 있는 게 아니라 화물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상시 교섭을 보장하는데 있다. 그래서 합리적인 임금 체계를 노사 합의를 거쳐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2월 산재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해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특례규정을 적용해 혜택이 일부에 그치는데다 했고 제외 신청이 가능하도록 해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비판이 많다. 컨테이너 박스에 깔려서 죽은 화물 노동자나 전염병에 옮은 간병 노동자, 빗길 오토바이 사고로 발목이 부러진 퀵서비스 노동자 등은 현재로서는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특수고용직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아일랜드는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는 피고용인은 모두 노동자로 판단한다. 영국은 근로계약 아니라도 직접 노무를 제공하거나 용역을 제공하는 노무제공자들에게 파업권을 보장하고 민형사상 면책권을 부여한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학습지 교사와 화물차주 등이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있지만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독일은 다른 노동자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일하면서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된 주문자에게 제공하는 용역으로부터 얻는 경우 유사 근로자로 인정하고 단체협약법에 따라 교섭과 쟁위행위를 보장한다. 프랑스도 별도의 법령에 의하여 제한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노동3권을 합법적인 것으로 승인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는 특히 둘 이상의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경욷에도 노동자로 인정한다. 이탈리아도 독립노무 제공자, 즉 법적으로는 독립사업자이지만 주문자와의 관계에서 경제적으로 종속관계에 있는 자에게 파업권을 인정한다. 캐나다 역시 특수형태 근로노동자를 노조법에 명문으로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에 따르면 군인과 경찰을 제외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스스로 선택하는 단체를 조직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고용관계의 존재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의 범위를 결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협약은 ILO 회원국 177개국 가운데 142개국이 비준한 기본협약에 해당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2003년도에 이정환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꼭 집는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노동현장에서 영화를 만드시는 김미례감독의 “노동자다 아니다”라는 영화죠.(뭐 아실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건설운송노동자의 삶과 노동조합의 탄생을 담은 작품입니다.
그시절 전경들에게 오함마세례를 받았던 유명한 사건인데,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건설운수노조의 탄생과 그 끝을 보게 해줬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와서 영화를 구하긴 어렵겠습니다만, 이런 사태의 시작은 변형적이고/교묘한 비정규직, 고용불안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충 봉합이 아니라, 크게 터졌으니 대대적인 혁신이 되길 바랍니다.
문제 제기는 좋습니다만. 문제에 대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 육성이란 해결책은 논점을 좀 벗어난 것 같네요. 그리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사업을 육성한다는 말은 좋지만 세계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산업이란게 어떤 것인지 모르겠군요. 말씀하신 진입장벽이 낮은 산업으로 사람들이 몰려서 공급과잉의 결과가 발생했다는 것은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습니다만은, 진입장벽이 낮아서 일반인들 역시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글로벌 사회와 경쟁하여 이길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국내상황으로 봤을 때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 자체가 거의 국가와 대형 자본의 주도로 육성되어 온 것들이 아닌지요?
그리고 여기 주인장께서는 화물차 차주를 사업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노동자였던 이분들이 개인 사업자로 되었고, 그 과정에서의 기형적 고용관계를 꼬집은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히 화물차 차주 분들도 사업체의 사업자로서 해당 기업과 거래와 협상을 통해서 운영을 하시는 것인데 구조상 협상자체가 가능하지 못하도록 마치 노예계약처럼 고용과 피고용이 결정되어있기 때문에 트럭아저씨들이 저렇게 고생을 하시고 있다고 생각을 드네요.
이게 현실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