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경우 소득을 축소신고할수록 유리한 혜택을 받게 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내놓았다.
경향신문은 18일 “국민연금 법 개정 고소득 자영업자 이상 혜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상호 한국재정학회 경제재정팀장의 보고서를 인용, “월 평균소득이 지역가입자의 2배가 되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경우 20년 가입시 실제소득을 그대로 신고한 경우에는 수익비가 1.27, 순연금액이 1942만원인 반면 27% 축소 신고할 때는 수익비 1.39에 순연금액은 2057만원이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소득을 50% 축소신고할 경우 수익비는 1.59, 순연금액은 2153만원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계산됐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기사에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지역가입자 평균 월 평균소득은 106만9천원이다. 지역가입자의 2배가 되는 고소득 자영업자라면 월 평균소득이 213만8천원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정리하면 월 평균 소득이 213만8천원이라고 신고하면 순연금액이 1942만원인데, 절반으로 줄여서 106만9천원이라고 신고하면 2153만원으로 오히려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착시현상을 유발하는 교묘한 통계조작이 숨어있다.
월 소득 213만8천원 → 순연금액 1942만원
월 소득 106만9천원 → 순연금액 2153만원
순연금액이란 받게 될 급여 총액에서 납부보험료 총액을 뺀 것이다. 순연금액으로 계산하면 경향신문이 사례로 든 것처럼 소득을 적게 신고할수록 받는 돈도 줄어드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급여 총액으로 계산하면 월 소득 213만8천원인 사람은 달마다 19만2천원씩 20년 동안 내고 65세 이후에 달마다 43만2천원씩 받게 된다. 납부 보험료 총액은 4608만원, 받게 될 급여 총액은 만약 78세까지 산다고 하면 6739만2천원이 된다. 이 경우 순연금액은 2232만2천원이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월 소득을 106만9천원으로 줄여서 신고를 하게 되면 보험료는 9만6천원으로 줄어들고 65세 이후 받게 될 급여도 31만1천원으로 줄어든다. 납부 보험료 총액은 2304만원, 78세까지 급여 총액은 4851만6천원이 된다. 이 경우 순연금액은 2547만6천원이 된다.
여기에 실질이자율 등을 감안해 은퇴연도를 기준으로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계산이 조금 달라지지만 큰 차이는 없다. 결국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월 소득 213만8천원 → 65세 이후 월 43만2천원, 78세까지 총 6739만2천원
월 소득 106만9천원 → 65세 이후 월 31만1천원, 78세까지 총 4851만6천원
일단 분명한 것은 소득을 줄인다고 해서 급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줄어드는 것은 순연금액이지 급여총액이 아니다. 물론 수익비는 소득이 적을수록 더 높은데 이는 연금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감안하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김 교수와 경향신문은 “축소신고할수록 유리한 혜택을 받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 신경해 연구원은 “국민연금법 개정 전이나 개정 후나 소득이 낮을수록 수익비는 더 낮다”면서 “다만 개정 전에는 소득이 낮을수록 순연금액이 줄어들었지만 개정 후에는 급여가 전반적으로 줄어들면서 소득이 낮을수록 순연금액이 늘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 연구원은 “개정 전이나 개정 후나 국민연금은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주도록 설계돼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순연금액의 절대규모가 아니라 소득을 축소신고해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악용하는 사람들을 적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문을 작성한 김 교수도 “소득이 낮을수록 순연금액이 많은 것 자체를 문제삼기는 어렵다”면서 “논문의 주제는 자영업자들의 소득파악 능력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인데 일부 언론에서 이를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기사를 쓴 경향신문 기자는 “보고서 원문을 보지는 못했고 연합뉴스에 올라온 기사를 다듬어서 게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기사의 팩트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데 축소신고를 조장하는 것처럼 읽혀질 소지가 있는 것 같다”면서도 “자영업자들 소득파악이 중요하다는 기사의 전체 맥락은 독자들이 이해할 걸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효과와 관련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소득 상한선을 높이는 것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눠 월 소득월액 분포를 나타낸 그래프인데 상한인 360만원 이상이 전체 가입자의 11.4%나 된다. (빨간색이 직장가입자, 파란색이 지역가입자다.)
신 연구원은 “소득 상한선은 국민연금 제도 도입 때 200만원이었다가 1995년 360만원으로 오른 뒤 13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면서 “국민연금 제도 개선 논의가 나올 때마다 상한선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논의에 진전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나 연봉 3천만원의 샐러리맨이나 국민연금 보험료가 몇 만원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신 연구원은 “물론 소득 상한선을 높이는 것 못지 않게 변호사나 의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을 하는 것도 매우 시급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역가입자 415만416명 가운데 소득 360만원 이상이라고 신고한 사람은 1.2%인 5만1622명 밖에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