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주고 광고 받고. 경제지들의 기획·특집면은 오래된 관행이지만 23일 매일경제 B섹션에 실린 “든든한 노후”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는 정도가 지나치다. 6쪽에 걸쳐 연금보험과 퇴직연금, 실손형 의료보험 등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기사 하단에는 삼성화재와 동양생명, 알리안츠생명, 동부화재, 메리츠화재 등의 광고가 실려있다. 어디까지가 기사고 어디까지가 광고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매일경제는 “우리 국민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크면서도 실제 준비는 매우 취약한 실정”이라면서 “민영 의료보험을 통해 암, 뇌출혈, 급성심근경색증 등 노년층이 걸리기 쉬운 중대 질병 진단과 치료비, 재해로 인한 수술, 입원비, 간병비, 장례비용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둬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삼성금융연구소 관계자의 말을 인용, “우리나라 가계 금융자산 현황을 보면 2006년 현재 예금이 47.6%, 투자형 자산이 29.6%, 보험과 연금이 22.8%로 선진국과 비교하면 예금비중이 상당히 높고 미래 대비 차원 투자나 보험과 연금 자산 비중이 너무 낮다”고 지적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예금을 줄여 투자를 늘리거나 연금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 말을 한 사람이 보험회사 관계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한 이 기사가 하단의 광고주의 이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도 참고해야 한다.
B2면에 실린 변액연금보험 관련 기사는 더욱 노골적이다. 미디어오늘이 이미 지난 기사에서 최저수익률을 보장해준다는 광고문구를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참고 : 25년 뒤 130% 원금 보장? 한겨레의 이상한 낚시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315)
이 기사에서는 “교보생명은 수익률에 상관없이 원금의 130%를 보증한다”면서 “펀드의 운영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연금 개시시점에는 그동안 낸 보험료의 130%를 연금적립금으로 보증해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기사에는 연금 개시시점까지는 25년 이상 남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누락돼 있다. 25년 뒤 원금의 130%, 즉 30%의 수익률이라면 연간 수익률은 1.2% 밖에 안 된다.
사례로 든 다른 상품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연금 적립금의 110~120%를 보증해준다는 메트라이프생명이나 연금액이 투자수익률에 따라 상향조정된다는 ING생명이나 납입보험료를 100% 보장해주고 연금 개시 이후 적립 이율을 최저 연복리 3%로 보증해준다는 동양생명이나 20년 이상의 장기투자를 감안하지 않고 수익률 보장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투자자를 현혹하고 있다. 사업비가 과도하게 많이 책정돼 있어 중도 해약의 경우 형편없는 액수의 해약환급금을 돌려받게 된다는 사실 또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B3면에 실린 인덱스보험 관련 기사도 문제가 많다. 제목은 “증시 침체 신경 쓰이는데 인덱스보험으로 눈 돌려볼까”, 작은 제목은 “지수연계 변액연금보험, 주가 떨어져도 최저 1% 수익 보장 든든”이다. 인덱스보험이란 주식시장의 종합주가지수나 코스피200지수 등과 수익률이 연동되도록 설계된 보험상품을 말한다. 이 기사에는 여러 인덱스형 변액연금보험이 소개돼 있는데 최저수익 1%를 보장하는 상품은 일부인데다 이 경우도 역시 사업비를 제외한 나머지 투자원금에 대한 수익률이다.
만약 사업비가 원금의 25%라면 100원의 보험료를 냈을 때 실제로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되는 금액은 75원 밖에 안 된다. 이 경우 20%의 수익률을 냈더라도 실제로는 원금의 90%만 돌려받게 된다. 보험회사는 20%의 수익률을 강조하기 때문에 가입자들은 12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되지만 실제로는 90원만 돌려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대부분 경제지들이 이런 내용을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 금융감독원 역시 보험회사들의 이런 불완전 판매를 묵과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보험상품의 심사절차를 개선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퇴직연금이나 방카슈랑스 등 일부 상품은 사전신고를 원칙으로 하되 나머지 보험상품에 대한 규제는 전면 자율화된다. 보험회사들의 과도한 사업비 책정을 수수방관하는 것을 넘어 아예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는 이야기다.
B5면에 실린 실손형 의료보험 관련 기사도 가입자들이 꼭 알아야 할 핵심적인 내용을 빠뜨리고 있다. “15년 만기납 기준으로 월 7만원 정도 보험료를 내면 일반 상해시 최고 3천만원, 질병 사망시 최고 1천만원, 치매간병 위로금 1천만원, 암이나 뇌출혈 진단시 500만원, 상해 의료비 100만원 등이 가능하다”는 보험회사 홍보문구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 보험이 모든 질병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건강보험과 비교할 때 보험료가 터무니 없이 비싸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
“변액보험 인기 쑥쑥”이라는 B2면 하단 기사는 보험회사들의 이런 마케팅이 충분히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월납 초회보험료 실적이 지난해 5조원을 넘어섰다. 1년 동안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고 지난 5년 동안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변액보험의 전체 수익보험료는 17조3210억원으로 5년 동안 22.7배나 늘어났다.
시장이 놀랄만한 속도로 팽창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매력적인 상품이라 소비자들이 찾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짭짤한 장사가 되기 때문에 보험회사들이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선 때문일 수도 있다. 대부분 소비자들이 자신들이 가입하는 보험상품의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후자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기사와 광고의 차이가 모호해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사실 둘 다 정보임에는 분명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