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0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삼성 비자금사건 결심 공판에서 징역 7년과 추징금 3500억원을 구형 받았다. 11일 경제지들은 일제히 탄식을 내지르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1면 “그를 보낸다, 너무 절묘한 순간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 리더로 한국에서 이건희 만한 이름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라며 개탄했다. “결정적일 때마다 던져진 그의 선문답 같은 한 마디가 삼성을 움직이고 재계와 사회를 바꿔왔다”면서 “지금쯤 그는 대혼돈의 바다 위를 비춰줄 섬전 같은 지혜와 통찰을 가슴 한편에 묻어둔지도 모른다”고 소회를 털어놓는 대목에서는 낯이 뜨거울 정도다.
이 신문은 “우리”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를 법정으로 내몬 현실을 자책했다.
“그의 퇴장은 우리가 강요한 유일한 해법이었다. 들추고 또 들춰냈다. 그렇게 물러나라고 10년을 몰아세운 끝에 결국 그를 물러나게 하는데 성공했다. 드라마틱하게도 그 시점은 금융, 부동산, 자원이 난마처럼 얽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 진 경제위기 상황. 삼성이, 한국경제가 가장 그를 필요로하는 절묘한 순간에 우리는 그를 무대 밖으로 밀쳐내고 만 것이다.”
한국경제 39면에 실린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의 칼럼 “이건희 전 회장의 눈물” 역시 가슴을 치는 대목이 많다. 박 교수는 아예 “기업가 정신은 징벌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편다. 누가 기업가 정신을 징벌하겠다고 했나.
박 교수는 “기업가는 감옥에 수감할 수 있으나 기업가 정신은 교도소 독방에 가두어서는 안된다”며 “기업가 정신은 감옥에 넣을 것이 아니라 대명천지(大明天地) 빛을 보게 해 국내시장이나 국제시장을 막론하고 펄펄 살아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리하듯 ‘기업인’과 ‘기업가정신’을 딱 부러지게 분리하기가 어렵다”며 “규제와 구속을 싫어하는 기업가들은 통념적 의미에서의 범법자나 범죄자와는 달리 모험과 창의가 넘쳐 흘러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거리낌없이 넘나드는 사람들”이라는 기상천외한 논리를 끄집어 낸다.
이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지식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박 교수는 기업가 정신을 살리기 위해 이 전 회장의 범죄를 묵인할 것을 사법부에 요구하고 있다.
“사법부는 이 회장의 범법성 유무와 관련 ‘정의의 여신’처럼 저울질을 하고 있다. 그 저울질 가운데 하나라면 배임과 조세포탈이 유죄인가 하는 문제 못지않게 삼성의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는 길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헤럴드경제는 거의 소설을 썼다. “이 회장같이 그런 신념 통찰력 가진 경영자를 다시 보긴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는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의 발언을 옮기거나 “(이 전 회장이) 자신에게 어떤 판결이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삼성인을 걱정했다”고 전하는 등 이날 공판을 한편의 감동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이순(耳順)을 넘긴 그룹 총수와 2인자는 법정에서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최후진술에서 총수는 ‘다 안고 가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고, 2인자는 울먹이며 보좌를 잘못한 책임을 자신이 다 지겠다고 말한 뒤다. 20년 동안 손발을 맞춰 1등 기업을 일군 총수는 이제 ‘자연인’임에도 회사 임직원에게 마음을 썼다. 2인자는 ‘복심(腹心)’은 ‘충심(忠心)’과 다른 뜻이 아님을 보여줬다. 특별검사팀이 이들에게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각각 징역 7년에 벌금 3500억원, 징역 5년의 무거운 형량을 구형하자 방청석의 일반인들은 자리를 떴다. 그러나 뒤편에 있던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 임형규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맨’ 10여명은 회한이 묻어나는 총수와 2인자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을 끝까지 지켜봤다.”
이 사건 선고공판은 16일에 열린다. 만약 재판부가 배임 혐의와 관련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을 적용할 경우 부당이득의 규모가 50억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조세포탈 혐의의 경우도 탈루 규모가 연간 10억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되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지만 만약 재판부가 작량 감경을 통해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내리고 이를 절반으로 줄여줄 경우,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