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반토막… 서브프라임 여파로 추가 하락 불가피할 듯.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로 미국 은행 상당수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괴담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1월 한국투자공사(KIC)가 투자한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투자손실이 벌써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KIC는 1월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매입 당일 주가는 주당 53.1달러. 2010년 전환 기준가격은 51.4달러에 전환 시점의 주가를 기준으로 최대 17%의 프리미엄을 적용해 보통주로 전환되고 그때까지 연 9%의 배당을 받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14일 기준으로 메릴린치의 주가는 27.61달러까지 떨어졌다. 전환가격과 비교하면 46.3%의 손실. 거의 반 토막이 난 셈이다. 메릴린치의 주가는 지난해 1월 97.53달러에서 가파른 속도로 추락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 됐다. 메릴린치가 처음 투자했을 때만 해도 국내 대부분 언론은 “싼 가격에 잘 샀다”는 반응이었지만 주가는 바닥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급전직하 추락하고 있다.
KIC의 투자 손실은 전환가격 기준으로 9억2568만달러에 이른다. 연 9%의 배당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주가 수준이라면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경우의 수는 세 가지다.
만약 2010년 10월, 주가가 전환 기준가격에 17%의 프리미엄을 더한 61.31달러가 넘는다면, 이를테면 주가가 100달러까지 오를 경우 주당 38.69달러(=100-61.31)의 차익을 얻게 된다. 만약 주가가 기준가격인 51.4달러와 61.31달러 사이에 머문다면 시세대로 사들이게 된다. 이 경우 이익은 연 9% 배당에 만족해야 한다. 물론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한 수익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주가가 51.4달러를 밑돌 경우 고스란히 그 손실을 떠안게 된다. 만약 주가가 20달러까지 떨어진다면 시장에서 20달러에 팔리는 주식을 51.4달러에 사들여야 한다. 이 경우 주당 31.4달러(=20-51.4)를 손해보게 된다. 손실 규모는 12억2177달러, 여기에 2년9개월의 이자수익 4억9500만달러를 감안해도 7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보게 된다.
문제는 17일로 예정된 메릴린치의 실적 발표가 결코 좋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대형 모기지 업체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데 이어 중소형 은행들의 연쇄도산에 대한 괴담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13일 150개 이상의 중소형 은행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메릴린치의 도산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지만 여러 전망을 종합해 보면 60억 달러 이상의 자산상각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메릴린치 뿐만 아니라 미국 금융시장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암울하다는 데 있다.
KIC 경영기획팀 관계자는 “주가가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조기 청산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1년 동안 락업이 걸려 있기 때문에 청산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출렁거릴 것도 충분히 예상한 바 있다”면서 “지금 시점에서 평가 손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목할 부분은 KIC가 운용하고 있는 2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이 국민들 세금으로 조성된 자금이라는 사실이다. 수출 대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한때 외환보유액을 늘려가며 환율을 끌어올리던 정부가 외환보유액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자 무분별한 해외투자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외환보유액을 털어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는 위험천만한 도박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