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원·달러 환율 평균은 928원에서 지난달 1031원으로 11% 정도 뛰어올랐다. 유가는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 기준으로 1배럴에 67.5달러에서 134달러까지 거의 두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수입 원자재 가격도 지난 1년 동안 92.5%나 올랐다. 당연히 물가도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6월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5% 올랐다. 소비자 물가가 5%를 넘어선 것은 2001년 6월 이후 7년 만이다. 문제는 원자재 가격이 공산품과 서비스 가격에 반영 되면서 물가를 더욱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는데 있다.


“다 오르는데 임금만 안 오른다.”

주목할 부분은 대부분의 언론이 한 목소리로 임금 인상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흔한 논리가 높은 물가가 임금 인상 요구로 이어지고 인건비 상승이 다시 물가에 반영되는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임금-물가상승의 악순환(wage-price spiral)”인 셈이다.

조선일보는 일찌감치 11일 “힘들어도 금리는 올리고 임금 인상은 자제해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른바 각계 전문가들을 동원해 최근의 경제 위기를 진단하고 그 탈출법을 제안한 바 있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물가 상승이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고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도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임금 인상을 자제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은 “물가 상승 불씨가 임금 상승으로 옮겨 붙는 것이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거의 같은 이야기를 세 번이나 반복 인용한 셈이다.

서울신문은 16일 사설에서 “서로 제몫 챙기기에 나선다면 우리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국난을 함께 극복한다는 자세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도 이날 사설에서 “유가 폭등에서 촉발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임금인상으로 더욱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데 민간과 공공이 따로 없다”면서 “민간 기업도 임금인상 자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다분히 기업 경영자나 사용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것이다. 경영자나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분을 당장 제품 가격에 반영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부담이 되겠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당장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이 동결되면 그만큼 실질 임금이 줄어들게 된다.

어느 언론도 경제가 어려우니, 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니 기업의 이윤을 줄이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결국 경제위기의 고통 분담을 최종적으로 노동자들이 떠안게 된다. 노사상생도 좋고 위기극복도 좋지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임금 인상은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에 앞서는 당장 생존을 위한 절박한 요구다.

게다가 당장 임금을 동결하는 것은 단기적인 처방일 뿐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 이론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인건비 상승이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되겠지만 그렇다고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것이 이 위기를 넘기는 최선의 해법인가는 따져볼 문제다.

한국은행의 하반기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8%,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6%로 예상된다. 특히 하반기 GDP 성장률은 3.9%에 그칠 전망이다. 성장의 둔화와 물가 상승추세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은은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7%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압력은 꽤나 높지만 비용 상승분이 최종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는 속도가 느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물가 상승 못지않게 내수 부진의 우려도 크다는 이야기다. 6월 소비자기대지수는 86.8을 기록했다. 5월에는 92.2였다. 소비자평가지수는 5월 72.2에서 61.8로 떨어졌다. 2003년 9월에 59.9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그만큼 소비 심리가 얼어붙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위기는 과도한 임금 보다는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와 누적된 부동산 거품이 만들어낸 천문학적 규모의 가계 부채에 있다. 임금 인상을 자제하거나 동결하는 것만으로 넘어설 수 있는 위기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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