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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 투기자본 앞잡이 노릇, 금지시켜야 한다.”

‘보이지 않는 제국’ 펴낸 윤상일 변협 공보이사, “의뢰인 이해 앞서 경제정의 고민해야.”

윤상일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가 최근 외국 사모펀드의 공격에 맞서는 국내 변호사들의 활약을 그린 소설을 냈다. ‘보이지 않는 제국’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언뜻 2003년 9월 론스타펀드의 외환은행 인수를 연상케 한다. 윤 변호사가 론스타의 법률대리인인 김앤장법률사무소 출신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업계 서열 5위로 급부상한 최강로펌. 어느 날 이 로펌에 장미은행의 대규모 손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들어온다. 최강로펌은 시민단체와 손을 잡고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집단소송을 준비하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미은행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최강로펌은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협에 맞닥뜨리게 된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는 장미은행의 해외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론에 슬쩍 흘린다. 인수주체는 홍콩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 퍼시픽파이낸스다. 미국과 영국의 사모펀드들이 뒷돈을 댔다는 소문이 있을 뿐 이 회사의 구체적인 지분구조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장미은행 행장과 금융감독원, 미국대사관, 그리고 퍼시픽파이낸스 관계자 등이 비밀리에 회동을 갖고 장미은행의 매각을 논의하는 과정도 외환은행의 경우와 놀랄만큼 비슷하다. 이들은 청산시키기 보다는 일단 살리고 보자는 명분으로 장미은행을 정체불명의 투기자본에 헐값에 넘기기로 합의한다.

주목할 대목은 장미은행의 대규모 손실과 관련한 루머의 출처가 바로 이 퍼시픽파이낸스와 이들의 법률대리인인 다비드앤솔로몬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시민단체를 내세워 장미은행을 공격하도록 하고 주가가 떨어진 틈을 타서 지분을 늘렸다. 이들은 또 동시에 최강로펌에 전방위 압력을 넣으면서 인수합병을 제의한다.

현실의 외환은행과 소설의 장미은행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재무구조가 열악하고 자금수혈이 필요하긴 하지만 청산이나 경영권 매각을 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런데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매각을 밀어붙였고 금융기관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가 정부 관료들과 결탁해 편법을 동원한 점 등이다. 헐값 인수가 편법이지만 불법은 아니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차이점이라면 외환은행의 경우는 국내 최대의 로펌이 론스타의 국내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왔지만 소설에서는 이 부분이 빠져있다. 오히려 국내 로펌의 정의로운 변호사들이 외국계 로펌의 공격에 맞서는 줄거리로 흐르고 있다. 드러나지 않은 법조계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어딘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투기자본들이 국내에 진출하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시세차익을 챙겨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국내 대형 로펌과 소속 변호사들이 이들의 정관계 로비스트로 활동해 왔음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소설은 정작 우리 안의 적들을 공격하는 데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윤 변호사는 “변호사 윤리장전에 경제정의와 관련한 조항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뢰인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기 보다는 사회 전체 공동의 이해와 정의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한변협은 이와 관련, 윤리장전 개정위원회를 두고 1년 가까이 개정 작업을 벌여왔다.

구체적으로는 의뢰인이 불법행위를 했거나 하려고 한다고 판단되면 신고를 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될 전망이다. 의뢰인이라고 하더라도 불법을 눈감아 줘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다. 변협은 이달 말께 시안이 나오면 상임이사회 논의를 거쳐 내년 1월 정기총회 안건으로 제출할 계획이다.

윤상일 변호사는 김앤장 변호사를 거쳐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과 마산지검 거창지청 검사로 재직하다 1986년 다시 변호사로 개업, 1991년 서울종합법무법인을 설립하고 대표 변호사로 재직중이다. 대통령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을 역임하고 대한변협 공보이사, 대한변협신문 편집인, 아주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등을 맡고 있다.

다음은 윤 변호사와 일문일답이다.

– 픽션이긴 하지만 장미은행은 외환은행을 염두에 두고 쓴 것 아닌가 하는 강한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정도까지 현실을 반영한 것인가.
“굳이 외환은행을 생각하고 쓴 건 아니다. 다만 사모펀드라는 건 애초에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고 사냥감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퍼시픽파이낸스의 경우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주가를 떨어뜨린 다음 지분을 매입하고 정부 관료들을 구워삶아 경영권을 헐값에 사들인다. 이게 사모펀드의 속성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경우라면 불법 행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외국 로펌이 공격하고 토종 로펌이 이에 맞서는 줄거리다. 약간 이상하지 않은가. 실제로는 토종 로펌이 투기자본의 앞잡이가 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외국 자본이 국내에 들어올 때 국내 상황을 잘 아는 국내 로펌과 손을 잡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갈수록 변호사의 직업윤리가 더 중요하게 되는 것 같다. 변협에서 윤리장전 개정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세계화 시대 좀 더 엄격한 경제정의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현행 윤리장전은 2000년에 개정된 것으로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개정 윤리장전에서는 의뢰인이 불법행위를 했거나 하려고 한다고 판단될 경우 신고를 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될 계획이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해상충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법적정의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의도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개정 취지다. 현행 윤리장전에는 이런 부분이 애매하고 추상적이다. 이를 바로잡을 계획이다.”

현행 변호사 윤리장전 14조에는 “변호사는 의뢰인의 범죄행위 기타 위법행위에 협조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직무수행 중 의뢰인의 행위가 범죄행위 기타 위법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된 때에는 즉시 그 협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부분을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 김앤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에서는 다비드앤솔로몬이라는 로펌을 내세웠지만 비슷한 의혹을 김앤장이 받고 있는데.
“김앤장을 흔히 법조계의 삼성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앞서 가는 부분도 많고 다른 기업이나 로펌이 배울 점도 많지만 그만큼 문제점도 있다. 김앤장도 우리나라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고 인정을 받는다. 나도 김앤장 출신이지만, 이런 로펌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지나친 부분도 있고 비판받을 부분도 있다.”

– 흔히 첨단 금융기법이라고 불리는 금융거래 가운데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경우도 많다. 물론 퍼시픽파이낸스처럼 의도적으로 허위 정보를 흘린다면 명백히 불법이 되겠지만 매수차입거래(LBO) 같은 경우는 그 경계가 애매하다.
“LBO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자기자본 없이 LBO를 추진하면 배임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20~30% 자기자본을 들여 위험을 안고 들어가면 합법으로 인정받지만 거저 먹으려 들면 불법이 된다. 그 기준이 명확히 있는 건 아니고 케이스바이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5%인 경우도 합법일 수 있고 30%가 넘어도 불법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어떤 경우든 합법인데 우리는 좀 더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 장미은행을 퍼시픽파이낸스에 넘기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나. 실제로 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은 외국인 지분이 80%에 육박하고 외환은행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 역시 이들 은행과 큰 차이가 없다. 토종은행과 외국계 은행은 뭐가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고 보나.
“중요한 것은 외국인 지분이 많으냐 적으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일단 첫 번째 원칙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목적의 사모펀드에 은행의 경영권이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지분이 많으면 좋겠지만 그건 이미 시장을 개방한 이상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최소한 금융기관을 투기적 매매의 매물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동시에 금융기관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참고 : 김앤장, 공정위를 접수하다. (이정환닷컴)
참고 : 공정위-김앤장-론스타-외환은행 묘한 인연. (이정환닷컴)
참고 : 김앤장을 위한 변명. (이정환닷컴)
참고 : 김앤장을 믿을 수 있나.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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