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어렵사리 경쟁을 뚫고 승리를 쟁취했는데 막상 이겨도 남는 게 없고 오히려 손해인 경우를 말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가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


기업 인수합병과 관련, ‘승자의 저주’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랜드그룹을 꼽을 수 있다. 이랜드는 2006년 대형 할인매장 홈에버(옛 까르푸)를 1조7500억원에 사들였는데 실제로 들인 돈은 3천억원 밖에 안 됐다. 이랜드 계열사인 뉴코아가 2천억원, 이랜드월드가 1천억원을 댔고 나머지 지분은 한국개발금융 등 전략적 투자자들에게 쪼개 팔았다. 부족한 1조500억원은 모두 부채로 해결했다. 그 결과 이랜드는 엄청난 이자비용에 시달려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호되게 착취하면서도 해마다 적자를 냈고 결국 올해 5월 삼성테스코에 홈에버를 다시 내다팔게 된다.

돌아보면 이랜드의 홈에버 인수는 이랜드에게나 홈에버에게나 양쪽의 주주와 노동자들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었다. 고려시멘트와 서울증권, 하이마트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주목받았던 유진그룹 역시 자산이 10배로 늘어났지만 부채비율도 2배로 늘어났고 결국 유동성 악화와 신용도 하락으로 ‘승자의 저주’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나 역시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는 STX그룹도 툭하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대우조선해양의 올해 매출은 1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올해 이후 전망은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추산.)

매각을 앞두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특별한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사의 주인은 정부다. 이번에 매물로 나올 지분은 산업은행이 보유한 31.26%와 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한 19.11% 등 모두 50.37%. 시장가격으로는 3조7천억원 정도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한데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최소 6조원에서 8조원까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조선해양의 모태는 대우중공업이다. 정부가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대우중공업에 쏟아부은 공적자금은 2조8천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대우중공업은 1998년 대우사태로 워크아웃에 돌입했다가 이후 공적자금을 지원 받고 기사회생에 성공,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종합기계로 분리됐고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에 인수돼 두산인프라코어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우종합기계의 매각가격은 1조6880억원이었다. 만약 대우조선해양을 6조원 이상에 매각하면 정부는 원금 회수는 물론이고 5조원 이상 이익을 챙기게 된다.

물론 국민들 세금을 쏟아 부은 만큼 최대한 비싸게 팔고 많은 이익을 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 ‘국민기업’을 단돈 6조원에 팔아치우는 것이 최선일까. 공적자금 회수도 중요하지만 지난해 매출 7조1048억원에 영업이익이 3212억원, 당기순이익이 3068억원에 이르는 이 알짜배기 국민기업을 특정 재벌에게 넘겨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이 회사는 지난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지난해보다 52.3%와 152.0%씩 늘어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데 이어 3분기에도 이를 갱신할 전망이다. 올해 매출은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워낙 만만치 않은 가격이라 대우조선해양을 노리는 기업들은 한정돼 있다. 현금 동원력이 확실한 포스코와 GS그룹이 욕심을 내고 있고 한화그룹과 두산그룹도 욕심을 냈지만 여력이 달린다는 평가가 많다. 두산그룹은 결국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26일에는 현대중공업까지 가세하면서 4파전 양상으로 가는 분위기다. 대우조선해양이 알짜배기 기업이긴 하지만 누가 인수하든 인수가격이 6조원을 넘어서면 한동안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굳이 50.37%의 지분을 한꺼번에 팔아치우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다른 대안도 가능하다. 과거 포스코처럼 국민주 형태로 잘게 쪼개 파는 방법도 있고, 늘 실패했지만 우리사주조합에 일부 지분을 넘겨 국내 최초로 차입형 종업원주식인수(ESOP, Employee Stock Ownership Plan) 모델을 시도할 수도 있다. 정부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기한다면 5% 미만으로 나눠 파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 경우 소유지배구조가 분산돼 좀 더 합리적인 경영을 기대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실질적인 주인은 국민들인데 국민들은 과연 이 기업을 더 비싸게 팔아치우기를 원할까 아니면 국민들의 자산으로 남겨두고 제 역할을 하기를 원할까. 극단적인 주주자본주의가 경제 전반을 지배하는 시대에 국민기업의 역할이라면 일부 주주들에게 단기적인 시세차익이나 배당을 안겨주기보다는 10년 뒤 30년 뒤를 내다보고 지속적인 설비투자와 고용창출로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 기업의 이익은 국민들 모두에게 배분돼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자칫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머니게임의 제물이 된 수많은 공적자금 투입기업들의 전철을 밟게 될 우려를 남긴다. 정부는 왜 국민기업을 팔아 대박을 터뜨리려고 하는 것일까. 정부가 매각을 계획하고 있는 공적자금 투입기업은 이밖에도 대우증권과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일렉트로닉스, 현대건설, 현대종합상사, 쌍용건설, 쌍용양회, 하이닉스, 한국항공우주산업, 우리금융지주, 팬택, 팬택앤큐리텔, 서울보증보험 등 14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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