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상대적으로 버락 오바마가 존 매케인보다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다음은 28일 오바마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가운데 일부다.
참고 : Barack Obama’s Acceptance Speech. (뉴욕타임즈)
“가장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이 주고 그게 아래쪽 사람들에게까지 흘러 내릴 거라는 희망을 줘라. 워싱턴에서 그들은 이를 ‘소유자 사회(Ownership Society)’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게 진짜 의미하는 것은 당신이 가진 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일자리가 없어? 운도 지지리도 없구나. 건강보험이 없어? 시장이 해결해 줄 거야.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어? 스스로 앞날을 잘 개척해봐. 누구나 다 가진 대로 사는 거야.”
오바마는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감세와 일자리 창출, 건강보험 확대, 교육 기회 확충, 이라크 철군 등을 약속했다.
“우리의 진보는 많은 사람들이 모기지 대출을 갚을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진보는 또 우리가 조금씩 여유 자금을 모아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대학을 졸업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진보는 23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평범한 사람들 가구 소득이 평균 7500달러 늘어났던 빌 클린턴 대통령 때처럼 말이죠. 조지 부시 대통령 때는 무려 2천달러가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는 경제의 힘을 억만장자들의 숫자나 포츈 500대 기업의 이익으로서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누군가가 용감하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고 손님에게 받은 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식당 종업원이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도 일자리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노동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그런 경제를 말합니다.”
그의 연설은 힘이 넘치고 감동적이지만 어쩔 수 없이 공허하다. 일자리 만드는 기업에게 세금 혜택을 주겠다는 건 어딘가 이명박과 비슷하기도 하다. 저소득 계층에게 세금 환급을 해주겠다는 건 이미 부시가 여러 차례 써먹었으나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정책이다. 과연 2300만개의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이며 가구 소득을 어떻게 7500달러나 늘릴 것이며 부시가 망친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더 나은 미래, 도덕과 자유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이 신자유주의 제국주의의 구조적인 모순과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글쎄 나는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다. 노동의 존엄성이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과연 지켜질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부시나 매케인보다 훨씬 매력적인 사람인 것은 분명하고 그의 등장 자체가 새로운 변혁인 것도 분명하지만 아마도 그가 바꿀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난 것 아닐까. 물론 이명박처럼 20년씩 퇴보하는 경우는 가능하겠지만 말이죠. 그나저나 바다 건너 우리나라의 진보 성향 신문들이 미국의 대통령 후보에게 열광하는 것은 어딘가 꼴 사나운 느낌인데요. 한겨레는 “오바마의 변화의 약속에 거는 기대”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던데요. 뉴욕타임즈 사설을 그대로 번역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주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