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 계약자들은 봉인가. 생명보험회사들이 올해 하반기 대거 주식시장 상장을 앞두고 있다. 해묵은 논란이지만 보험회사들이 벌어들인 이익은 주주들의 몫일까. 아니면 보험 계약자들의 몫일까. 동양생명이 지난달 28일 국내 최초로 증권선물거래소 상장심사위원회에서 예비심사를 통과해 오는 10월 상장을 앞두고 있다. 교보생명과 금호생명, 삼성생명 등 다른 생보사들도 상장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생보사들이 상장에 목을 매는 것은 주식 추가 공모를 통해 막대한 현금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생명의 경우 2천만주를 2만원 수준에 공모해 4천억원 이상을 끌어 모으게 될 전망이다. 자본시장통합법 시대에 발맞춰 신규 사업 진출이나 사업 확장, 인수합병 등에 필요한 실탄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기존 주주들 입장에서는 주식시장에서 마음 놓고 주식을 거래할 수 있게 돼 환금성이 높아지고 시세차익을 실현할 기회도 갖게 된다.

그러나 계약자들 입장에서는 보험회사들의 이익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으로 주주들에게 빠져나가는 걸 지켜봐야 한다. 극단적인 경우 주가를 끌어올리고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보험료를 올려 받거나 보험혜택을 줄이더라도 계약자들은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다. 보험계약을 해지하는 것 외에 이에 맞설 방법도 없다. 그동안 내부 유보금의 배분 문제를 놓고 숱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정부는 늘 주주들 편에 서 왔다.

2006년 상장자문위원회는 “생보사는 주식회사이므로 계약자에게 주식을 배분할 이유가 없고 내부 유보금은 계약자 몫의 부채로서 계약자 배당금으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철저하게 주주들의 입장을 반영한 결과였는데 금융위원회는 이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대부분 생보사들이 2001년부터 유배당 상품을 폐지하고 무배당 상품으로 전환해 왔다는 사실이다.

상장을 앞두고 있는 동양생명 관계자는 “상장차익은 당연히 주주들의 몫이니까 아예 논의의 대상이 아니고 우리 회사는 유배당 상품을 거의 팔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 유보금도 전혀 배분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면 무배당 상품 계약자들은 내부 유보금에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건 우리 같은 일개 생보사 차원에서 논의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도 “과거에 판매된 유배당 상품의 경우 이미 배당이 끝났고 그래도 미진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 생보사마다 사회공헌사업 등에 지속적으로 출연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보사도 주식회사인 이상 주주들에게 내부 유보금을 배당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언론 보도 역시 대부분 업계 소식을 전달하는데 그칠 뿐 계약자들과 주주들의 이해상충 문제를 고민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보험소비자협회 김미숙 회장은 “생보사 주주들이 챙기게 될 상장차익과 내부유보금은 엄밀히 따지면 보험 계약자들의 보험료를 착복한 부당이득”이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지금은 소수의 주주들이 이익을 챙겨가는 구조지만 상장 이후에는 다수의 주주들이 이 부당이익을 나눠 갖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면서 “결국 보험 계약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주주들이 가로채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소비자협회는 향후 상장 생보사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벌이는 것을 비롯해 전방위 압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김 회장은 또 최근 매각설이 떠돌고 있는 일부 생보사들을 상대로 계약자들이 사원으로 참여하는 상호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할 계획이다. 이익의 전부를 계약자들에게 돌려주는 새로운 형태의 생보사가 등장하면 집단 독과점 형태의 생보시장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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