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결국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9일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5.00%로 0.25%포인트 내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8월 금리를 인상한 뒤 두 달 만인데 이처럼 정책기조를 갑자기 뒤집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한은의 전격적인 금리인하는 세계적인 금융 불안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국제유가의 하락으로 물가부담이 줄어든데다 특히 8일 유럽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도 한은의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도 내년 경제성장률이 6년 만에 3% 수준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한은을 압박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 상반기까지 좋은 징조가 없다”면서 “성장률이 4% 밑으로 떨어지면 잠재 성장률을 밑도는 경기침체가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안정 보다는 경기회복에 주력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 총재는 “앞으로 금리는 국제 금융시장의 상황에 맞춰 결정하겠다”며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이 5%를 넘어섰고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상황이라 이번 금리인하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 총재도 “환율이 안정되지 않으면 물가에 앞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걱정이 남아 있다”면서 “물가는 현저히 내려가기는 어렵지만 내년에 많이 꺾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금리인하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채권환매로 이어지고 원화약세를 부추기고 금융과 물가 불안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총재는 이와 관련, “시장 참가자들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면서 “한은의 금리인하가 외환시장에 추가적인 불안으로 작용할 요소는 없다”고 강조했다.
갑작스럽게 정책기조를 뒤집은 것과 관련, 이 총재는 “8월까지만 해도 국제유가가 70~80달러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하기 어려웠고 그때는 경기 둔화보다는 물가에 우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두 달 사이에 환경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에 문제는 없다”고 강조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게 옳다”는 이야기다.
시장의 반응은 일단 우호적이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인 전망도 많다.
현대증권 이은미 연구원은 “세계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금리를 인하한 뒤라 여전히 재정거래 유인이 지속되고 있어 이번 금리인하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그러나 “향후에도 경기 하락세가 지속되겠지만 내년 하반기부터는 내수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경기가 회복세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화증권 정문석 연구원은 “한은의 금리인하는 긍정적인 조치이기는 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금융위기의 근본적 해소에는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없다”면서 “장기적으로 경기부양 효과를 거두려면 금리인하가 상당 기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연구원은 “금리인하 뿐만 아니라 유동성 공급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증권 남우도 연구원은 “금리인하가 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건 분명하지만 한은은 한가하게 물가 타령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회사채 발행이 전면 중단된 상태고 조만간 대기업 연쇄 부도 등 뭔가 큰 건이 터질 거라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