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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지주회사?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금융위원회가 13일 발표한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가운데 가장 민감한 이슈는 보험지주회사와 금융투자(증권)지주회사가 제조업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도록 허용한 대목이다. 이번 개정안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첨예한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순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지주회사가 지회사 형태로 비금융회사를 직접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되, 비금융 손자회사 지배는 금지될 전망이다. 그러나 금융투자지주회사의 경우는 금융 자회사가 비금융회사를 지배하는 방식을 허용할 계획이다.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 출자총액은 금융지주회사 자기자본의 100%로 제한된다.

현행 보험업법에는 보험회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보유하고 있는 비금융업 회사 주식을 모두 팔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를 보험지주회사 소유로 전환해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길을 열어뒀다. 그동안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보험지주회사 전환을 모색해 왔던 삼성그룹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건희 전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일가가 삼성에버랜드를 소유하고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삼성에버랜드를 소유하면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문제는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에버랜드의 지분 25.6% 가운데 5%가 넘는 20.6%를 2012년까지 모두 매각해야 한다는데 있다. 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7.3% 가운데 역시 5%가 넘는 2.4%에 대해 2009년부터 의결권이 제한될 상황이다. 순환출자의 핵심 고리가 끊긴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보험지주회사의 경우 비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허용했다. 만약 에버랜드를 보험지주회사로 전환한다면 삼성전자나 삼성물산 등 핵심 계열사들을 자회사로 둘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 비금융회사들은 자회사로는 가능하만 손자회사로는 불가능해 일단 거미줄처럼 얽힌 지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에버랜드가 삼성생명과 지주회사가 되고 삼성생명이 대주주로 있는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투신 등 금융 계열사들을 손자회사로 두면 된다. 그러나 삼성전자나 삼성물산, 호텔신라, 제일기획이나 삼성종합화학, 제일모직, 삼성SDS 등 비금융 계열사들은 손자회사나 증손자 회사가 될 수 없다.

만약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보험지주회사를 만들 계획이라면 유일한 대안은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이 보유한 손자회사들 지분을 사들여서 이 회사들을 자회사로 만드는 것뿐인데 손자회사의 수가 너무 많기도 하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이 필요해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실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금융투자지주회사도 허용할 계획이다. 이 경우 증권사가 중심이 되고 금융자회사 밑에 제조업 손자회사를 둘 수도 있어 삼성그룹의 경우는 훨씬 유연한 지배구조 개편이 가능하다. 다만 지주회사의 핵심 축이 될 삼성증권의 자금 여력이 많지 않아 삼성전자 등을 자회사로 편입시키기에 무리가 있다.

현재로서는 삼성생명 지주회사가 유력한 가능성이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일단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팔지 않아도 된다는 데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이해상충 등을 이유로 손자회사 규정을 엄격히 하고 있어 당장 지주회사 전환은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위원회 김주현 금융정책국장은 “결국 삼성을 위한 규제완화 아니냐”는 질문에 “삼성이 비은행 지주회사를 하겠다고 하면 삼성더러 이걸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 국장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데 인센티브를 주어서 선진적 제도로 바꾸자는 것이 법 개정안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부분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전제로 하는 우리나라의 금융지주회사 구조 하에서 비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것은 결국 재벌 총수일가의 금융계열사를 이용한 그룹 지배력 확장 및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제공해주는 것일 뿐”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김 교수의 주장은 “미국의 버크셔해서웨이나 GE그룹의 경우처럼 비은행 지주회사 산하에 금융 자회사와 비금융 자회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 자회사간 출자관계는 전혀 없고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 결국 자회사의 손자회사 지배요건 등을 완화하기 위한 수준 아니냐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 김주연 연구원은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삼성전자가 삼성생명의 자회사가 되는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가 어떤 형태가 됐든 하나의 지주회사 아래 나란히 자회사로 묶일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삼성생명을 위한 규제완화라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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