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의 금융 지배 허용과 함께 논란이 되는 또 다른 쟁점은 사모펀드의 은행 소유를 어떻게 볼 것이냐다. 14일 금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관련 법안에 따르면 산업자본이 30% 미만 출자한 사모펀드는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으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산업자본이 10% 이하 출자한 사모펀드만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


정부와 일부 보수·경제지들의 주장은 과거 제일은행이나 외환은행의 경우 국내 자본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어 부득이하게 외국계 사모펀드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그래서 국내 사모펀드에게도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 운동본부 김준환 사무처장은 이런 단편적인 현실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국내 자본이 역차별 받아 왔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애초에 논점이 잘못돼 있다. 론스타가 외국 자본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사모펀드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국내 자본을 역차별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법적으로 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에 정부 관료들이 편법으로 넘겨준 것이 문제다. 논점을 뒤섞으면 안 된다.”

– 국내 자본이든 외국 자본이든 애초에 사모펀드에게 은행을 소유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외국 자본이라도 사모펀드가 아니라면 이를 테면 HSBC나 DBS의 경우 국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데.
“그렇다. 최소한의 원칙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사모펀드에게 은행의 경영권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외국 자본이냐 국내 자본이냐도 물론 중요한 문제지만 법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이런 맥락에서 언론의 보도태도는 모순적이다. 왜 론스타는 안 되고 국내 사모펀드는 되나.”

– 이번 개정안에는 사모펀드의 경우 산업자본의 지분 참여가 30% 미만이면 산업자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 그 말은 30%가 안 되면 은행의 지분을 100% 보유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대기업 계열사 지분이 사모펀드 출자 총액의 50%까지 허용된다는 것이다. 사전·사후 심사를 한다고 하지만 외환은행의 경우만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제도를 풀어주고 심사로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 당장 외환은행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의 의도가 미심쩍다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모펀드가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있느냐를 놓고 재판을 벌이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허용하는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물론 소급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재판 결과를 의식하고 서두르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규제 잘 풀었다? 재벌 사금고화 우려에는 침묵.
보수·경제지들 금산분리 완화 ‘올인’… 실체 없는 ‘글로벌 스탠더드’.

정부가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를 금지하는 이른바 금산분리 원칙을 대폭 완화하기로 하고 14일 관련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결국 재벌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는 셈인데 언론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기업의 발목을 잡아왔던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며 환영하는 입장과 자칫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해 기업 부실이 금융 부문으로 전염될 수 있다며 반발하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금산분리 완화를 찬성하는 주장 가운데 핵심 논리는 민영화를 앞둔 산업은행이나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을 과거 외환은행처럼 외국 자본에 헐값에 넘길 수는 없다는 것. 국내 재벌 대기업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중앙일보다. 이 신문은 14일 사설에서 “이들 은행의 경우 국내 산업자본의 참여가 없으면 사실상 민영화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국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재벌 사금고’ 관련 우려에 대해 이 신문은 “재벌의 소유구조를 지주회사와 자회사 형태로 단순하고 투명하게 만듦으로써 소유와 경영상태가 그대로 드러나게 하고 과거처럼 재벌이 금융회사를 편법적으로 사금고화할 소지를 없앴다”고 평가했다. 또 “금융위기의 조짐이 보일 때 산업자본이 은행의 자본 확충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위기를 조기에 진화할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다른 종합일간지들을 비교적 찬반양론의 균형을 맞췄지만 경제지들은 대부분 중앙일보와 비슷한 논조를 펼쳤다. 파이낸셜뉴스는 사설에서 “금융회사의 대기업 사금고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밝혔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이보다 한발 더 나가 “금융산업 경쟁력을 위해 우리는 아직도 규제를 더 풀어야 할 입장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목할 부분은 상당수 언론이 이른바 규제 완화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정부의 왜곡된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8월 한국금융연구원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00대 은행 가운데 영향력 있는 주요주주가 없는 경우가 52.7%인 48개로 나타났다. 이 은행들은 최대주주 지분율이 10% 미만인 이른바 ‘주인 없는 은행’들이다. 5% 미만인 경우도 15.4%나 됐다. 금산분리 완화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번 입법예고안의 핵심은 소유제한 4%를 10%로 올리겠다는 것이었는데 이와 관련 언론보도에는 일방적인 찬성(보수·경제지들)과 일방적인 반대(경향신문·한겨레), 그리고 산술적 균형만 있을 뿐 전면 금지와 전면 허용 사이의 적정한 규제 수위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부족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유 제한 규정을 두고 있고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나라도 많다.

금산분리 완화를 둘러싼 논쟁은 재벌에게 은행 소유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둘러싼 다분히 정치적인 논쟁으로 비화된 상태다. 금융연구원 이상재 연구원은 “고속도로 속도 제한은 물론 필요하지만 나라마다 기준은 다 다를 것”이라며 “도로 여건이나 차의 성능, 운전자들의 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효율성과 교통사고 발생률 사이에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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