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또 내놓았다. 올해 들어 여섯 번째다. 투기지역을 해제하고 부동산 대출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설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분양 주택과 토지를 매입하는 등 모두 9조원 상당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대책이다. 정부는 21일 이 같은 내용의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먼저 돌아볼 문제는 과연 정부와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건설업 위기가 심각한 상태냐는 것이다. 미분양이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나고 있고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 위험도 확대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분양가가 시장의 기대보다 높고 일부 지역의 경우 이미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탓이다.
부동산 담보 대출 부실 역시 세계적인 금융 불안 영향이 크지만 결국 부동산 거품에 편승해 과도한 부채를 끌어들인 개인과 이를 방조한 금융회사들 책임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투기적 거래를 늘려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고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와 금융 부실을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순철 국장은 “정작 위기의 근본 원인인 건설사들 구조적 부실을 뿌리 뽑는 대책이 없다”면서 “이런 상황이라면 언제든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토지정의시민연대 이태경 사무처장도 “개별 기업들 경영 실패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방식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말하는 위기의 근본 해법은 부실한 건설사들을 퇴출시키고 분양가를 강제로 낮추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건설사들 재무구조를 엄격히 규제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강화하면 된다. 국민들 혈세를 퍼붓는데 건설사들도 구조조정의 성의는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윤순철 국장의 이야기다.
최근 인천 청라지구에 참여한 하도급 업체들이 받은 건축비가 280만원 수준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분양가 거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가늠하는 단서가 된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해도 500만원이 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는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30%만 분양에 성공해도 손해는 안 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윤 국장은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것과 달리 건설업의 위기는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건설사들 6만개를 모두 안 망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 후분양제와 최저가 입찰제, 직접 시공제 등을 도입하고 분양가를 파격적으로 낮추는 것이 거래를 늘리고 침체된 건설경기를 살리는 유일한 해법이다.”
입찰만 받아 하도급을 주고 이윤을 챙기는 페이퍼 컴퍼니들도 분양가 거품의 주범이다. 10년 전보다 건설사 수가 3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이들을 먹여 살린 것은 300조원 이상의 부동산 담보 대출을 끌어다 쓰며 투기 열풍에 동참했던 국민들이다. 혹독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인데 정부의 대책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정부와 언론은 왜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는 시장원리에 맡겨둬야 한다면서 가격이 떨어질 때는 개입을 하고 나서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당장 충격은 피할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결국 부실이 터져 나올 것이고 훨씬 더 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