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로 떠도는 이야기 중에, 만약 2208년의 어느날 고고학자들이 확장자가 HWP인 문서를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때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니 뭐니도 이미 사라진지 180년쯤 지난 때고 그나마 아래아 한글이라는 프로그램은 들어본 사람도 없을 때다. 이 문서를 열어보려면 박물관에 있는 2000년대 초반의 퍼스널 컴퓨터를 빌려다가 220V의 교류 전원을 흘려 넣고 정부 비밀 기록 보관소에나 있을 프로그램을 어렵사리 복사해다 돌려서 겨우겨우 열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정부 문서 표준이었던 하나워드로 작성된 문서를 열어보려면 MS 도스나 윈도우즈 3.1 따위에다 어딘가 먼지가 내려앉은 하나워드 디스켓을 가져다 설치해야 한다. 이 첨단 웹 2.0 시대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바로 문서 포맷이 공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주식회사 한글과컴퓨터만의 파일 포맷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HWP 뷰어가 말 그대로 보여주기만 할 뿐 텍스트 복사도 안 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텍스트 복사는 되지만 리눅스나 맥에서는 상용 프로그램을 사지 않는 이상 아예 열어볼 수도 없다. 리눅스나 맥용 HWP 뷰어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최소한 텍스트라도 뽑아볼 수 있는 방법도 없다.
MS 오피스는 대안으로 오픈 오피스나 스타 오피스가 있고 씽크프리 같은 웹 오피스도 있다. PDF도 마찬가지다. 굳이 어도비가 아니라도 문서 포맷이 공개돼 있어서 누구나 뷰어나 편집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한글은 아무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돈을 주고 사는 수밖에 없다.
우스갯소리로 한글과컴퓨터가 포맷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공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워낙 지저분한 탓에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웹 오피스가 보편화된다면 한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애플리케이션이 아니라 통째로 웹으로 옮겨가는 추세인데 한글은 도대체 파일 포맷을 알 수가 없다. 구글 메일에서 워드나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나 PDF 파일은 모두 클릭만 하면 웹에서 바로 열리지만 HWP는 다운로드 해서 한글을 실행시켜서 열어야 한다.
파일 포맷을 공개하라는 게 오픈 소스를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다른 회사들도 HWP 파일을 읽거나 편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파일 포맷을 움켜쥐고 아무도 이 파일을 열지 못하게 만들면 계속 독점이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은가.
한글과컴퓨터는 HWP 파일 포맷을 공개해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HWP 뷰어나 편집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픈 소스 프로그램도 나와야 한다. 그리고 MS 워드에서도 HWP 파일을 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차기 버전에서는 HWP 파일도 Open XML 포맷이나 다른 국제적 표준을 따라야 한다. 사용자 입장에서야 무슨 표준을 쓰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편리하면 되지. 불편함을 계속 강요한다면 한글 역시 결국 하나워드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