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외환은행 헐값 매각이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으로 조작된 사건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규진)는 24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전 외환은행 행장, 이달용 전 부행장 등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이 전 행장에 대해서는 병합된 사건의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1억57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2002년과 2003년 대규모 자본 확충 필요성이 인정되고 1조원 이상 대규모 신규자금 투입 의사가 있는 투자자로 론스타 이외 다른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 입찰이 아니라 사실상 수의계약이라 하더라도 그 방식과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러한 판단은 경영 판단 내지 정책적 판단, 그리고 보유 주식을 임의로 매각할 수 있다는 사적 자치의 자율적 판단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왜 단순 증자가 아니라 경영권을 통째로 매각했어야 했느냐는 핵심 쟁점과 관련해 “론스타 쪽에서 51%의 지분을 원했기 때문에 당초 자본 확충만을 원했던 외환은행으로서는 자연스럽게 경영권 이전을 수반하는 은행 매각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변 전 국장와 이 전 행장 등이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을 임의로 조작해 외환은행의 부실을 과장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금융감독원이 산정한 수치와 다소 차이가 있는 점 등 부적절한 측면이 있고 그러한 행위에 피고인들을 포함해 관련자들 중 누군가가 개입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협상 결렬 가능성을 줄이고 대주주 또는 감독 당국에 대해 대규모 신주 발행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나아가 수출입은행 및 코메르츠방크에 구주 매각을 설득하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고의적으로 가격을 낮추거나 경영 상황 악화를 이유로 예외승인을 통해 론스타에게 인수자격을 부여해주기 위한 배임의 의사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 같은 전망치가 전혀 가능성이 없음에도 가능한 것처럼 꾸며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조작됐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삼일회계법인과 모건스탠리 등의 외환은행 가치 평가와 관련, “부적절한 행위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역시 “인수 과정에서 가격을 고의로 낮추거나 예외승인을 통해 론스타에게 인수자격을 부여해주기 위한 배임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 정경제부가 론스타에 예외승인을 통해 인수자격을 부여한 것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예외승인이 은행법 시행령 및 재경부의 유권해석의 적용범위를 벗어났거나 적절치 않은지 여부는 행정법원이 판단할 문제”라며 “이와 관련 변 전 국장 등의 범의를 인정할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배임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수 가격이 적정했었느냐는 논란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최종 인수가격은 가치산정의 가격 범위와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 협상력과 당시의 경제 상황 및 외환은행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며 “더 높은 가격으로 론스타 또는 제 3자가 주식을 인수하거나 매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손해는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론스타에 인수자격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은행법 시행령 일부 조항에 재경부의 유권해석을 적용했는데 그 적용이 적법 타당한 것인지 여부는 행정소송 절차에서 다뤄질 문제이므로 업무상 배임을 다루는 이 사건에서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변 전 국장와 이 전 부행장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이 전 행장에 대해서는 홍기옥 코아정보통신 회장으로부터 전산장비 납품 관련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 전 행장에게 뇌물을 제공한 홍 회장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이 전 행장은 항소심을 고려해 보석상태를 유지하기로 하고 법정구속하진 않았다.
아날 재판은 재판부가 BIS 비율 산정 등 외환은행의 경영상황에 대한 판단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으면서도 론스타에 예외규정을 적용하면서까지 경영권을 넘긴 것과 무관하고 관련 당사자들에게도 배임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함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자본확충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투기적 목적의 사모펀드의 사실상 정부 소유였던 은행의 경영권을 넘길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있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은 2003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변 전 장과 이 전 행장 등이 외환은행의 부실 규모를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정상 가격보다 최대 8253억원의 낮은 가격에 매각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이다. 지난달 14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추가 기일을 요구하며 변론을 종결하려는 재판부와 대립, 결국 퇴정함으로써 검찰의 구형 없이 결심공판이 끝내는 초유의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