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판단이면 배임·탈법 아니다? 언론도 공범이 될 것인가.
외환은행 헐값 매각 관련 재판에서 24일 법원이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데 대해 대부분 언론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합법”이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들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합법인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게다가 변씨 등은 이제 1심을 끝냈을 뿐이고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여부와 관련해 다른 재판도 아직 진행 중이다.
1. 자본 확충 필요해 팔아 넘겼다?
법원은 “외환은행에 대규모 자본 확충의 필요성이 있었고 론스타 이외 다른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았던 데다 론스타가 51%의 경영권을 요구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영권 이전을 수반하는 은행 매각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살리려고 자본 확충을 추진했는데 자본 확충을 하기 위해서는 경영권을 팔아넘기는 게 불가피했다는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매각 이전 외환은행의 최대주주는 수출입은행과 한국은행으로 각각 32.5%와 10.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수출입은행의 100% 주주가 한국은행이니까 외환은행은 사실상 정부 소유 은행이었던 셈이다. 만약 정부가 외환은행을 살릴 계획이었다면 최악의 경우 경영권 매각 보다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증자를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변씨 등은 외환은행의 경영 부실을 과장하면서까지 매각을 밀어붙였다.
2. 부실 과장한 것과 매각은 관계 없다?
법원은 또 변씨 등이 외환은행의 부실을 과장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금융감독원이 산정한 수치와 다소 차이가 있는 점 등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협상 결렬 가능성을 줄이고 대주주 또는 감독 당국을 설득하기 위한 것일 뿐 배임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협상을 타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전망을 낮춰 잡은 건 사실이지만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다.
법원의 주장 가운데 특히 논란이 되는 대목은 이처럼 부실을 과장한 것이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던 론스타에게 예외승인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씨 등이 만든 자료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외환은행 매각을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고 예외승인을 허용할 때 결정적인 근거 자료로 활용된 바 있다. BIS 비율은 외환은행 매각의 핵심 열쇠인데 법원은 이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3. 액면가 이하에 팔았어도 불리한 것 아니다?
론스타는 51%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의 지분 5170만주를 주당 5400원에 사들이고 2억6875만주를 새로 발행해 주당 4천원에 사들였다. 경영권 프리미엄은커녕 금감위 승인 결정 당시 주가 4650원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었다. 수출입은행이 처음 외환은행의 유상증자에 참여했을 때 매입단가가 6479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가손실은 무려 1366억원이나 됐다.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넘겨주기 위해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엄청난 손실을 떠안았고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넘겨 다른 주주들에게도 손실을 초래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수출입은행이 재경부 등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 불리한 가격 조건을 수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실사 결과나 가치 평가에 일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서도 “이 결과들이 최종 가격 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됐다고 볼 수 없다”는 애매모호한 논리를 펼쳤다.
4. 만나긴 했지만 공모는 없었다?
그렇다면 관건은 변씨 등이 금감위에 론스타의 예외승인과 관련해 부당한 압력을 넣은 사실이 있느냐다. 금감위는 과연 외부 압력 없이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기기로 결정했으며 매각 가격이 적정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법원은 “변씨가 김석동 금감위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 등과 공모해 고의로 예외승인을 하도록 했는지 인정할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면서 “배임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변씨와 이씨, 김씨 등과 청와대 주형환 행정관, 외환은행의 매각 자문사인 모건스탠리 신재하 전무 등 10여명이 매각을 두 달 앞둔 2003년 7월, 비밀 대책회의를 가진 사실이 이미 밝혀져 있다. 이 자리에서는 수출입은행을 설득하는 문제와 은행법 시행령 예외 기준을 적용해 론스타에 대주주 자격을 승인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면담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공모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5. 돈은 받았지만 직무와는 관련 없다?
법원은 변씨가 론스타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하종선씨로부터 1천만원짜리 수표와 회식비 대납 400만원 등 모두 4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의혹과 관련해서도 “변씨와 사적인 친분관계에서 선의로 교부된 것일 뿐 변씨가 외환은행 매각 관련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더라도 위와 같은 행위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변씨가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해 직무상 부정한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변씨가 퇴직 이후 사모펀드를 설립하고 외환은행으로부터 400억원의 투자를 받은 것과 관련해서도 외환은행 매각과 무관하다고 판단했고 이씨가 퇴직 이후 19억원 이상 고문료와 성과급 등을 지급 받은 것도 대가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변씨와 이씨가 외환은행 매각을 전후해 론스타로부터 상당한 금액의 금전적 혜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법원은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6. 론스타는 과연 대주주 자격이 있었나?
론스타는 결국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 규정을 적용 받아 외환은행을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의혹은 과연 사모펀드인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있었느냐다. 설령 외환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이었거나 부실 금융기관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고 하더라도 만약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국내에서는 금융기관을 소유할 수 없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를 간과하고 있지만 론스타가 운용하고 있는 6개 펀드의 구체적인 투자 내역은 알려져 있지 않다. 만약 론스타의 자회사 가운데 비금융회사의 자본총액이 25% 이상이거나 비금융회사의 자산총액 합계액이 2조원 이상이면 론스타는 산업자본으로 분류되고 금감위의 인수 승인은 원인 무효가 된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반기마다 한번씩 실시하도록 돼 있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결과를 2006년 하반기부터 발표하지 않고 있다.
7. 금융위원회는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일단 법원이 변씨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기는 했지만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여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금융위는 론스타펀드 4호가 산업자본이 아니라는 사실만 공개했을 뿐 나머지 5개 펀드의 지분 구조에 대해서는 “론스타에서 공개하지도 않을뿐더러 확인하려고 해도 확인이 쉽지 않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는 매각 승인 당시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아예 고려 대상에 넣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합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는 언론 보도와 달리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와 대주주 자격 박탈 여부는 행정법원에서 진행 중인 재판 결과에 달려 있다. 이와 함께 론스타의 투자자 가운데 검은 머리 한국인이 섞여 있을 가능성과 변씨 등의 관련 여부 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법원이 변씨 등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5개의 재판이 남아있다. 서둘러 뚜껑을 덮으려는 법원과 언론의 태도는 문제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