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열렸던 지난달 31일 저녁, 서울 보신각 일대에서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시민들은 “MB악법 반대”와 “방송장악 저지” 등의 구호를 외쳤고 손 팻말과 풍선 등을 압수하려는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행사를 현장 중계한 KBS는 시위대에 카메라를 비추지 않았고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미리 녹음된 박수소리로 대체하는 등 진실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건 2일 동아일보의 사설이다. 동아일보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가 시위대 4천여명이 외치는 반정부 구호 속에 묻혀 버렸다”면서 “8만여 시민이 참여하는 송구영신의 축제가 짜증스러운 혼란으로 바뀌었다”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시위대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기 위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광우병 괴담을 확산시켰던 바로 그 세력”이라면서 “일관되게 친북 반미시위를 벌이는 세력”이라고 단정지었다.
이 신문은 “평화로운 제야 행사를 깽판 친 세력이 북한과 직접적인 연계성을 가졌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면서도 “북한의 노동신문이나 평양방송이 어떤 주장을 내보내면 며칠 뒤 서울의 친북반미 단체들이 같은 주장을 하며 시위를 벌인다”는 익명의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시위대의 순수성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불법적인 수단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을 단호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또 “시위에 묻혀버린 제야의 종소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도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촛불이 한해의 마지막 날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면서 “즐겁게 새해를 맞을 시민의 작은 소망마저 빼앗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예상보다 적은 인파가 모인데 대해서도 “추운 날씨와 시위대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그냥 집으로 돌아간 것 같다”면서 “현장에 출동한 1만5천여명의 젊은 전의경과 경찰관들도 추위를 떨며 새해를 맞아야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비난은 시위대의 구호 소리에 제야의 종소리가 묻혀버렸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송구영신의 축제, 제야의 종소리는 어떤 방해도 받으면 안 될 만큼 그렇게 신성한 행사인가. 이 신문은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주장을 한갓 시끄러운 잡음으로 치부한다. 시민과 시위대를 구분하면서 이들의 주장을 특정 정치세력으로 매도한다. 정작 왜 해가 바뀌어도 촛불이 꺼지지 않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없다.
촛불시위를 친북세력과 연계시키는 것은 고질적인 수법이면서 논점을 흐트러뜨리는 비열한 논리전개다. 일부 친북성향의 단체들이 참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이 신문은 “짜증스러운 혼란”이라고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정작 그 혼란의 책임이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촛불시위를 불법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문제가 많다. 타종 행사 관람 외에 2명 이상이 모여서 정치 구호를 외쳐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정부 비판을 듣지 않겠다는 반 민주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언론이 나서서 이를 불법시위로 규정하는 것은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막는 월권이다. “새해 가장 큰 소망이 이명박 정부 퇴진”이라는데 이들의 소망에 귀를 기울이지는 못할지언정 이를 짓밟을 권리가 동아일보에게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