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논란에 휘말린 박수근의 ‘빨래터’가 법원의 최종 감정 결과를 앞두고 있다. 박수근은 위작이 수십여점 된다고 하고 과거 이중섭이나 천경자 등도 위작 파문에 휘말린 바 있다.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더 해보자. 왜 미술 작품에는 위작 논란이 많은데 문학 작품에는 위작 논란이 없을까. 이를 테면 누군가가 박경리나 조정래나 김훈의 소설을 흉내 내서 이들의 사후에 이들의 이름으로 출판해서 돈을 버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미술 작품은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면 이름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격이 형성된다. 그러나 대량 생산이 가능한 문학 작품은 소장 가치가 거의 없다. 철저하게 작품성 또는 대중성이 판매량을 결정한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도 작품성이 떨어지거나 재미가 없으면 안 팔린다. 위작을 만들어 봐야 돈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위작을 만들 능력이 있다면 굳이 다른 사람의 유명세에 기댈 이유가 없다.
최근 가짜 미네르바 논란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풀어볼 수 있다. 미네르바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미네르바인 척 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과대평가 됐다는 지적도 많지만 미네르바가 쓴 글 가운데 일부는 예리한 직관과 통찰이 돋보였다. 설령 인터넷 어딘가에서 짜깁기한 글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글은 확신에 차 있었고 그의 관점은 충분히 유효했다.
그러나 미네르바가 아고라에 썼던 글과 박아무개씨가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쓴 글은 차이가 꽤나 크다.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이번에 박씨가 쓴 글은 그야말로 어디선가 베껴다 붙인 듯한 평범한 글이었다. 게다가 박씨는 미네르바가 신동아에 기고한 글을 자신이 쓴 글이 아니라고 밝혀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분명히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이 시점에서 진짜 미네르바를 둘러싼 의혹은 충분히 타당하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근거 없는 선동에 휘둘리기 쉬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리현상”이라거나 “전문대 졸업 백수에게 속았다”는 등의 비판을 쏟아내며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정부와 검찰의 의도일 수도 있다. 한겨레는 이에 “학벌 지상주의를 반성해야 한다”고 엉뚱하게 딴지를 걸고 나섰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미네르바가 전문대 졸업 백수일 리 없다”며 검찰 발표를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네르바를 평가절하하는 것만큼이나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전히 석연찮은 부분이 많긴 하지만 성급한 음모론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미네르바의 글은 분명히 참신하기는 했지만 여느 전문가들을 훨씬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미네르바 열풍은 애초에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지만 일부 언론의 과도한 미네르바 띄우기와 정부의 과민한 반응 때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