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의 대주주인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경영권을 포기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 9일의 일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따르면 쌍용차의 부채는 모두 8280억원이다. 채권단은 현재 확보된 380억원으로는 2월 초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법원은 그때까지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상하이차는 51%의 지분을 포기하는 대신 부채 부담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쌍용차의 법정관리 소식을 전하는 언론 보도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은 상하이차의 ‘먹튀’에 대한 비난이다. 상하이차가 2004년 쌍용차를 인수할 때 약속했던 연구개발비를 제때 지원하지 않은데다 핵심 기술을 빼내간 뒤라 경영권을 포기해도 손해 볼 게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먹튀라서 문제라는데 과연 먹튀가 불법인가.
한국일보는 10일 “상하이차, 쌍용차 경영권 잃어도 ‘남는 장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상하이차가 1조2천억원 규모의 투자 약속은 지키지 않은 채 스포츠유틸리티 차량과 국책사업인 디젤 하이브리드카 핵심 기술을 불법적으로 빼내갔다”는 노조의 주장을 강조했다. 경향신문도 “투자 않고 기술만 빼가… 결국 먹튀로 끝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04년 약 5900억원에 쌍용차를 인수한 뒤 기술 이전 효과만 따져도 남는 장사”라는 한 대학교수의 말을 결론으로 소개하고 있다. 상하이차가 기술이전 비용으로 쌍용차에 지급하기로 한 돈은 모두 1200억원인데 이 가운데 절반만 지급된 상태다.
그러나 언론은 상하이차의 먹튀를 비난하면서도 상하이차 역시 상당한 투자 손실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 신차 개발에 3천억원 정도가 들고 신차 2대의 기술을 빼내가면 본전 이상이라는 단순 계산을 적용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데이터는 없다. 게다가 기술 유출 논란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쌍용차의 경영권을 팔아넘겼을 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 기술 유출과 관련 배임 등의 혐의로 경영진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겠지만 당면한 위기에 본질적인 해법은 될 수 없다. 중국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부추기는 보도도 많지만 이 역시 공허한 신세 한탄일 뿐이다.
10일 한겨레의 사설은 순진한 현실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겨레는 “상하이차, 최대주주 책임 다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최대주주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지 않고 덜컥 법정관리 신청을 해서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난했다. 언제부터 주주에게 도덕적 책임 같은 걸 기대했단 말인가.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주주는 이익이 나지 않으면 언제라도 팔고 나가면 그만이다. 책임을 지기 위해 손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 유형은 노동자 때리기다. 언론은 아무런 다른 대안도 내놓지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구조조정을 감수하라는 경고를 늘어놓을 뿐이다.
동아일보는 “쌍용차 사태, 모든 기업에 남의 일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차량 생산 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20%로 경쟁업체의 2배나 되는 쌍용차 노조가 경쟁력 제고에 동참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노조에 책임을 물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임금 삭감 등 자발적인 양보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세계일보도 “이제 쌍용차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노사가 고강도 구조조정안에 합의하는데 있다”고 지적했고 조선일보는 “쌍용차의 무능력인가 상하이차의 무책임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일이 발목을 잡은 강성 노조 역시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노조에 책임을 돌렸다. 조선일보는 “쌍용차가 법정관리까지 가게 된 것은 노사 갈등 속에 경쟁력을 높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면서 “노조가 계속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12일 나란히 미국 디트로이트 현지 르포 기사를 싣고 “견제 없는 노조 권력이 발등을 찍었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늘어놓았다. 특히 한국경제는 “빅3 자동차 회사들이 퇴직자에게까지 연금은 물론 각종 보험 혜택을 제공토록 하는 등 견제받지 않은 권력을 휘둘러 왔다”면서 “그 결과는 회사와 노조, 지역 경제를 송두리째 위기로 몰아넣는 부메랑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 신문은 불황의 원인이 과잉 생산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 노조가 양보를 안 해서, 인건비 부담이 과도해서, 생산성이 떨어져서 등의 핑계를 대면서 노조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지만 과연 노조가 더 많은 양보를 해서 인건비를 깎아 생산성을 늘리더라도 결국 불황을 피할 수 없었을 거라는 사실, 또는 과잉생산을 늘려 불황을 더욱 앞당겼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임금을 낮추면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단순한 발상도 이해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비교하자면 중국 기업과 경쟁하려면 중국 노동자들 수준으로 임금을 낮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부분의 언론이 구조조정을 유일한 해법으로 받아들이면서 감원이 싫으면 임금 삭감을 감수하라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일자리 지키기가 우선”이라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다급한 외침도 언론 지면을 구석구석 파고든다.
쌍용차의 위기는 상하이차가 주주의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노조의 높은 임금 탓도 아니다. 주주에게 막연한 도덕적 책임을 기대하거나 노조에게 일방적인 고통분담을 강요하는 것으로 넘어설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쌍용차의 위기는 세계적인 자산가격 거품과 과잉 생산이 만든 구조적인 위기다.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주주들은 임금을 깎거나 인원을 줄이거나 아예 회사를 접는다. 지금 양보하면 다음에는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 쌍용차 노조는 상하이차와 싸울 게 아니라 과잉 생산과 위기를 반복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과 싸워야 한다. 쌍용차의 위기는 쌍용차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 노동자 전체의 문제다. 일부 한계 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희생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이 악순환을 끝낼 수 없다.
하민혁님 댓글에 추가공감하면서,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과 과잉생산을 지적하면서 “우리 하루에 4시간만 일하고 싶다/일해야한다/충분하다”라는 주장을 해야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지금까지는 (특히 자동차노조가) “특근을 보장해달라고!”만 외쳐왔었지요.
마지막 문단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해줍니다. 대신 그만큼 힘이 쭉 빠지는군요. 아무쪼록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