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에는 국내 최대 그룹인 삼성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임원 인사를 단행했죠?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까.
= 네. 스타급 경영자들이 대거 물러나고 젊고 현장형 인물을 중심으로 세대 교체를 했습니다. 지난 16일이죠? 15명 이상의 사장이 옷을 벗었는데요. 애니콜 신화를 만든 이기태 부회장이나 이른바 황의 법칙의 주인공인 황창규 사장 등 60대가 물러나고 50대 초중반인 젊은 부사장들이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 특징입니다.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과 이상대 삼성물산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죠. 삼성그룹은 2007년 9월 김용철 변호사 비자금 폭로 이후 삼성 특검에 휘말리면서 그동안 제대로 된 인사를 못했는데요. 김용철 변호사처럼 조직에 불만을 품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는 것 같던데요.
= 최지성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이 이윤우 부회장과 함께 투톱 체제를 구성하게 됐습니다. 최지성 사장은 이재용 전무의 가정 교사로 불릴 정도로 측근 중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를 두고 이재용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곧 부사장급 인사도 발표될 텐데요. 이번 인사에서 이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경영권 편법 승계와 관련, 대법원 판단이 아직 남아있고 신흥 시장을 개척하겠다며 해외 근무에 나선 것도 얼마 안 돼 부사장 승진은 이르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 이재용 전무가 삼성전자에 입사한지 얼마나 됐습니까.
= 이 전무는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01년 3월 상무보를 거쳐 2003년 2월 상무가 됐고, 2007년 1월 전무로 승진했습니다. 보통 전무 승진 뒤 3년이 지나야 부사장 승진 대상이 되는 인사 관행을 볼 때도 이번에는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시기는 좀 늦춰지겠지만 이재용 전무를 중심으로 인사 구조가 재편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재용 전무가 직접 영입한 것으로 알려진 MBC 앵커 출신 이인용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 그룹 홍보를 총괄하게 될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번에 60대를 대거 퇴진 시킨 것도 이재용 전무의 회장 등극을 앞둔 사전 포석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 지난해 이건희 전 회장이 물러나면서 경영에 전혀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 인사과정에 이 전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을 거라는 관측이 많은 모양이네요.
= 삼성은 지난해 전략기획실을 해체하면서 사장단 협의회만 남겨두고 계열사 독립경영체제를 갖추겠다고 했는데 정작 이번 인사에서는 사장단 협의회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인사를 위해 별도의 조직인 인사위원회가 구성됐는데요. 인사위원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모든 계열사 인사에 일괄적으로 적용됐습니다. 이윤우 부회장 등이 전면에 나서긴 했지만 이건희 전 회장과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 등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이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 등의 최대주주지만 다른 계열사들에는 지분은 많지 않거나 아예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모든 계열사에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삼성그룹의 후진적인 지배구조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하 생략.
(지난해 8월부터 매주 일요일 저녁 CBS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간단히 경제 관련 뉴스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삼성그룹의 임원 인사를 비중있게 다뤘지만 인사권을 누가 행사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방송에서나마 속시원하게 이야기를 해서 홀가분한 느낌이 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