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를 좀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서 지난달부터 전화 영어를 한다. 필리핀에 사는 라라라는 25세 여성이 선생님인데 하루 15분씩 통화를 한다. 라라는 전화를 걸 때마다 내가 무슨 기사를 쓰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나는 외환은행 재판이나 미네르바 사건,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 양극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현대차 노조 파업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다시 하게 된다. 어제는 라라가 TV에서 봤다며 용산 참사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대충 설명을 해줬더니 그 세입자들에게는 아무 권리도 없느냐고, 집 주인이 나가라면 나가야 되는 거냐고 물었다. 당연한 질문이지만 영어가 아니라 우리 말이었어도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뉴스를 보면서 철거민 운동을 하고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 그는 운동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친구들 사이에 연락이 끊긴지 한참 됐지만 아마 그도 숱하게 두둘겨 맞고 숱하게 울고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이 참담한 현실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게 한다.
헌법 35조 3항. “국가는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