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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조원만 있으면 은행 국유화도 할 수 있는데….

215조원 세금 쏟아 부으면서 간섭은 안 된다? 공적자금=공짜자금 될라.

관치금융이냐 국유화냐.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이 집행될 예정인데 정작 그 운용방안을 놓고 구체적인 논의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 정치권이 재보궐 선거에 한눈이 팔려 있었고 언론이 무관심한 탓도 있지만 일단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앞선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국회를 통과한 공적자금 특별법 개정안에 따라 지난해 2월 폐지됐던 공적자금 관리위원회가 오는 7월 다시 설치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보증 채권으로 조달하게 될 구조조정기금은 40조 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이밖에도 한국산업은행에서 분리될 한국정책금융공사가 운용하는 금융안정기금이 20조 원, 한국은행 등이 출자하는 은행자본확충펀드가 또 20조 원, 여기에다 정부가 보증하는 은행 외화차입 1천억 달러 등 공적자금 성격의 정부 지원을 모두 더하면 215조 원에 이른다. 덕분에 가뜩이나 불어난 국가채무가 급증할 전망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공적자금이 공짜자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공정성에 문제가 있고 효율성도 우려된다는 이야기다.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에는 최소비용의 원칙을 적용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정작 이를 입증할 자료의 작성과 보관 의무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이와 관련, 금융위는 “아직 부실이 현재화되지 않은 정상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선제적으로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최소비용 원칙을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내고 “이는 최소비용 원칙에 대한 오해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면서 “금융기관의 부실을 처리하는 다양한 방법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하고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작성·보관하도록 해서 2중, 3중으로 점검하고 사후 감사를 받게 하는 것이 최소비용 원칙 실현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를 “관치금융으로 회귀하려는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난했다.

경제개혁연대가 우려하는 것은 결국 선제적 지원을 핑계로 정부가 금융회사들에 암묵적으로 개입하는 관치금융의 폐해가 심화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또 금융위원회가 왜 예금보험공사를 두고 정책금융공사를 따로 설립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경제개혁연대는 “금융안정기금을 모피아의 늘어진 팔로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합법화하는 것”이라면서 “금융안정기금의 관리주체는 예금보험공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가 관치금융의 폐해를 우려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관치금융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책위원회 임수강 전문위원은 “정부가 금융의 실물지원 강화에 의지를 두고 있다면 먼저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우리은행이나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을 활용해야 한다”면서 “이들 은행들을 민영화하겠다면서 실물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모순일뿐더러 진정성마저도 의심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임 전문위원에 따르면 국민은행과 신한금융지주, 외환은행, 하나금융지주 등 7개 은행의 시가총액은 34조원을 웃도는 정도. 만약 17조원만 있어도 은행 지분 50%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임 전문위원은 “세금을 쏟아 부어서 은행을 살릴 게 아니라 아예 지분을 사들여서 은행을 통제하고 공적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공적자금이 경영 실패를 보완하고 주주들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민주노동당은 관치금융의 폐해가 우려된다면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는 민주적인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관치를 무작정 두려워할 게 아니라 ‘관’이 제대로 ‘치’하도록 사회적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언론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거나 부실 금융기관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주문하면서도 정작 공적자금의 공적 역할에 대한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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