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원에 목숨까지 거는 세상… 사람 죽이는 물류라면 멈춰도 되지 않을까.
“‘죽창’ 1000개”.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이 지난 17일 대전에서 열렸던 민주노총 집회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들이 왜 비오는 주말에 대전에 모여서 죽창 1천개를 들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신문이 이야기하는 건 다만 이들이 신고되지 않은 구간에서 행진을 강행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들에게 죽창을 휘둘렀다는 것 정도다.
이날 집회는 고 박종태씨를 추모하는 행사였다. 죽창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들이 휘두른 막대는 추모행사에 쓸 만장이었다. 그런데 중앙일보 기사에는 박종태라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 이들이 왜 분노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단 한줄도 없다. 6천명의 시위대가 불법행진을 하다가 이를 막는 5천명의 경찰과 대치하다가 몸싸움이 벌어져 경찰 104명과 시위대 40명이 다쳤다는 정도만 나와 있다. 경찰 차량 99대도 유리창과 문짝 등이 부서졌다.
이런 무관심과 성의 없는 보도 태도는 다른 신문들에서도 숱하게 발견된다. 오히려 보수·경제지들은 “경제위기 속에 물류대란 되풀이할 수 없다(한국일보)”거나 “숨쉴 만하니까 파업부터 벌이나(한국경제)”, “잊을 만하면 터지는 폭력시위 통탄스럽다(세계일보)”, “화물연대 폭력시위 용납될 수 없다(국민일보)” 등의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폭력시위도 안 되고 물류대란도 안 된다면서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박종태씨의 죽음은 30원에서 비롯했다. 박씨는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 지회장이었다. 그는 금호그룹 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일했는데 이들 택배기사들은 대한통운과 지난 1월 건당 수수료를 920원에서 950원으로 인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3월 들어 대한통운 쪽에서 일방적으로 인상불가를 통보했고 이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다음날 파업에 참여했던 78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했다.
박씨의 시신이 발견된 건 그가 유서를 쓰고 사라진 뒤 나흘 만인 이달 3일, 대전 읍내동 대한통운 본사 근처 야산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 박씨는 유서에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최소한 화물연대 조직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 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을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썼다.
늦은 봄비가 쏟아졌던 이날 추모집회에서 박씨의 부인이 유서를 읽을 때 6천명의 노동자들이 함께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어느 신문에도 이 같은 내용은 실리지 않았다. 만장을 들고 대한통운 본사까지 행진하겠다는 집회 참가자들을 경찰이 가로막고 섰을 때부터 충돌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박씨가 죽음으로 외쳤던 것은 노동기본권 보장과 비정규직 철폐, 합리적인 수당 정산 등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어디에도 가닿지 못했다.
동아일보는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1면과 3면에 각각 “죽봉으로 공격… 경찰 104명 부상”, “양방향 차로 점거 행진”이라는 제목의 현장 사진을 실은 것을 비롯해 1면에 “화물연대 총파업 결의… 물류 또 멈추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걸었고 3면에는 “작년엔 유가급등 따른 생계형 요구 정부도 공감했지만, 자영업자 화물연대 이번엔 노동자로 요구해달라 거센 요구”라는 제목의 기사로 쐐기를 박았다.
동아일보는 “법적으로 화물 차주는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라며 “화물연대 역시 노동자로 이뤄진 합법적인 노조가 아니”라고 단정짓고 있다. 이 신문은 또 3면 “위기의 민주노총, 화물연대를 탈출구 삼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성폭력 파문으로 촉발된 도덕성 논란과 인천지하철노조 등 대형 사업장의 잇따른 탈퇴로 약회된 투쟁동력을 이번 박종태씨 죽음과 화물연대 총파업 결의를 통해 다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넘겨짚기도 했다.
한국경제의 기사는 특히 악의적이다. 이 신문은 “화물연대가 집단운송 거부 등 불법적인 파업으로 물류대란을 또다시 촉발시킨다면 이는 경기회복의 싹을 움트기도 전에 잘라버리는 일이나 다름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신문은 또 “유가 급등으로 차주들의 생계가 위협받았던 지난해 총파업 당시와 비교해도 이번 파업은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며 “불법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처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신문은 “차주 10%선 참여… 파급력 안 클듯”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경제 위기로 일감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17만 화물 차주 가운데 화물연대 가입자인 최대 1만4천명이 운송을 거부한다고 해도 물류대란까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의 설명을 곁들였다. 이 신문은 “올해는 개별사업장의 일부 차주 문제로 시작됐고 이와는 무관한 화물연대 지회장이 자살을 하면서 불거진 문제라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는 “‘특수 고용직, 노동자 인정’ 해묵은 논쟁 재점화”라는 기사에서 “숨진 박씨가 복직을 지원한 차주는 회사와 계약하고 택배 배송업을 하는 개인 사업자며 대한통운에 고용된 정규직 택배기사와 지위가 다르다”면서 “박씨 역시 대한통운에 입사하거나 계약하고 택배업을 한 적이 없는 제3자로 회사와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했다. 이 신문도 이 “해묵은 논쟁”이 왜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낳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경향신문과 한겨레만 특수고용직의 노동기본권 문제를 화두로 끌어올렸다. 경향신문은 “국제노동기구(ILO)는 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노동자의 포괄적인 노조 결성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한겨레는 “정부의 근본적인 책무는 다름아닌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 특수 고용직 노동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노동법상의 보호고 이런 간단한 원리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상당수 언론이 물류대란을 염려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물류대란을 막는 것보다 물류대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고 박종태씨처럼 목숨을 던져가면서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이런 끔찍한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약자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물류라면 멈춰도 상관없다. 물류를 멈춰서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멈추는 게 맞다.
제목이 참 마음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