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가 최저임금을 시급 기준으로 5150원, 주 40시간 근무 월급 기준으로 107만6350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는 지난해 기준 5인이상 상시고용 노동자의 정액급여 215만3914원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올해 적용되는 최저임금 4천원과 비교하면 28.7% 인상된 금액이다. 지난해 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 월 평균 소득 389만5천원과 비교하면 27.6% 수준이다.
(임시일용직과 상용직, 전체 평균임금 비교. 빨간색은 초과급여, 초록색은 특별급여. 최저임금연대는 절반 수준으로 올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단위는 원.)
최저임금연대는 28일 요구안을 발표하면서 “이번 요구액은 경제위기의 올바른 극복을 위한 전제조건이며,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우리 사회 모두가 지닌 의무”라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연대에 따르면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처음 시행된 이래 20년 동안 최저임금은 6.91배 인상됐는데 같은 기간 일반 노동자의 정액급여는 6.77배, 임금총액은 6.27배 인상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국내총생산은 같은 기간 동안 7.47배 늘어났다.
최저임금 연대는 “적절한 임금의 보장은 노동자들이 경제위기에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제공하는 방안인 동시에, 내수회복과 경기선순환을 통한 경제 회생을 이끌어 내기 위한 최소조건”이라면서 “미국과 유럽 각국이 경제위기 이후 앞 다퉈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 의회는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60%로 맞출 것을 권고했고 미국 버락 오마바 대통령도 최저임금 인상을 약속한 바 있다.
올해 적용되고 있는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으로 4천원, 월급 기준으로는 83만6천원인데 한달 생계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게 최저임금연대의 주장이다. 이는 2008년 최저임금 3,770원 대비 6.1% 인상되는데 그친 수준이고 평균 임금 대비 36.6%로 가장 높았던 1989년38.4%에 비교하면 1.6%나 낮은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실질 인상률은 최저 2.4%에서 최고 4.7%에 그친 것으로 분석된다.
(최저임금과 평균임금 추이.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고 있다. 단위는 원.)
최저임금연대는 “국회에 계류돼 있는 최저임금법 개악안은 국적과 지역, 연령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별 적용하겠다는 내용으로, 이는 최저임금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용”이라면서 “지난 3월 한승수 총리의 최저임금제도 유예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은 경제위기로 벼랑 끝에 몰린 저임금 노동자의 목숨줄마저 끊겠다는 최악의 발상이며 경제위기 해법으로도 함량미달인 내용으로 일고의 검토가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 발표를 하고 “최저임금연대의 요구안은 현재 최저임금 4000원에서 무려 28.8% 인상을 요구한 것”이라면서 “현재 우리 경제와 노동시장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오로지 노동·사회운동의 선명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무리한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경총은 “2000년을 기점으로 최저임금 상승률은 연평균 10.1%에 달해 전 산업 임금인상률(5.9%)의 2배, 물가상승률(3.1%)의 3배 이상 급격히 올랐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현재의 경제 상황은 IMF 외환위기에 버금갈 정도의 위기상황으로 상당수의 우리 기업이 생존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라면서 “또 다시 고율의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진다면 영세·중소기업은 폐업으로 이어지고 근로자들도 노동시장 밖으로 내몰릴 것”이라면서 “노동계가 진정한 의미의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바란다면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저임금연대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줄어들고 회사가 어려워진다는 신화는 이미 여러 각도에서 반론에 부딪히고 있다”면서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최저임금제도는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있더라도 미미하며 일반적으로 저임금계층 일소, 임금격차 해소, 소득분배구조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밝히고 있다”고 반박했다.
최저임금연대는 노벨경제학상 수상 경제학자인 로버트 솔로의 말을 인용, “이론적으로 최저임금은 저소득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에 위협이 되지만 이러한 현상을 증명할 실제적인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솔로 교수는 그 이유로 “기업들이 임금 부담 증가분을 생산성 증대로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낮은 최저임금이 또 중소영세 사업체의 생산성 정체를 더욱 심화시켜 경쟁력 향상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저임금은 매년 노와 사,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 각 9인이 참여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90일간의 심의를 거쳐 최종안을 제시한다. 내년 최저임금안의 경우 최저임금위원회가 오는 6월29일까지 최종안을 심의·의결해야 한다. 이후 국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노동부 장관이 8월5일까지 결정해 고시하게 된다. 노동계가 28.8%의 인상을 요구한 반면, 정부와 경영계는 삭감 또는 유예를 고집하고 있어 원만한 합의가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