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22주년 범국민 대회는 경찰이 오후 11시께부터 진압을 시작해서 15분 만에 완전 진압됐다. 10일 저녁 시청 앞 태평로 일대는 온통 아수라장이 됐다. 인도로 밀려난 일부 시민들이 시위를 계속하고 있지만 이미 상당수 시민들은 귀가한 뒤다.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상당수 시민들이 다치거나 연행됐고 일부 시민들은 울부짖기도 했다. “평화시위 보장하라, 독재타도 명박퇴진.”
그러나 애초에 경찰은 시위대보다 3배 이상 많은 인원을 투입했고 방패를 내려치면서 위압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내 옆에 서 있던 한 여성은 신발이 벗겨져 나뒹굴었다. 신발은 10미터 뒤쪽에서 발견됐다. 경찰이 한 40대 후반 남성을 강제로 연행하려고 하자 시민들이 덤벼들어 제지하기도 했다. 이 남성은 의식을 잃고 한참 뒤에야 깨어났다. 일부 시민들은 소주병을 집어던지기도 했으나 다른 시민들이 만류했다.
경찰이 밀고 들어오면서 나는 광장 쪽 인도로 밀려나 서 있었는데 경찰들이 몰려오면서 가방 끈을 낚아채기도 했다. “인도잖아요”라며 뿌리치자 경찰은 “저쪽으로 나가란 말예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경찰에 밀려 넘어지는 시민들도 부지기수였다. 경찰은 안내방송으로 “기자 여러분들이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있다”면서 “인도 쪽으로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캠코더를 들고 뛰어다니던 블로거 몽구는 옆구리를 세게 얻어맞았다고 했다.
밤 11시30분께 시위대는 완전히 도로 바깥으로 밀려났고 태평로 일대는 다시 차량 흐름이 재개됐다. 물론 이날 저녁 시위대가 도로를 무단 점거한 것은 맞다. 그러나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고 다만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그런데 경찰은 머릿수로 시위대를 눌렀다. 남아있는 시위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과연 경찰은 이들을 힘으로 꺾어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인도로 몰아내고 나면 끝나는 걸로 생각한 것일까.
이날 집회는 이명박 정부 들어 꺼질 줄 모르고 확산되고 있는 촛불시위가 한층 더 진화된 형태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물리적인 광장을 폐쇄했지만 정치적인 광장은 오히려 더욱 확대되고 있다. 정리해고를 당해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평범한 회사원들과 청소년들까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유모차 부대도 없고 광우병 집회 때보다 숫자도 크게 줄었지만 비판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광장의 시민들은 여전히 무력하지만 방관자로 머물기보다는 지는 싸움일지언정 광장에 나서서 자신들의 주장을 외치는 쪽을 선택했다. 덕분에 잊혀져 가고 있던 용산참사에도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한번 더 돌아보게 됐고 이명박의 성장 이데올로기에 근본적인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가장 큰 성과는 화석화된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날 눈길을 끈 것은 이날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이 나서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해야 할 때”라고 외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전국 청소년 3천여명은 시국선언문을 내고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서 부당함에 눈물짓는 사람들이 없도록 직접 나서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내세운 구호는 “배운대로 행동한다”였다.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가 묵살되고 배제되는 현실에서 이들의 외침은 무력하게 현실에 순응하고 방관하는 어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진은 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