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jeonghwan.com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를 읽다.

나카타니 이와오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된 건 미국의 물질적 풍요가 사라진 걸 발견하면서부터였다. 30년 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풍요로운 삶을 즐겼던 중류 계급이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저소득 계층은 급증하고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그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회의하기 시작했고 결국 전향을 선언한다.


나카타니 이와오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74년 귀국해 규제완화와 구조개혁을 진두지휘했다. 1990년대 호소카와 내각과 오부치 내각의 수상자문기관의 일원이었고 오부치 내각에서는 경제전략회의 의장 대리를 맡기도 했다.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개혁론자였던 그가 갑자기 “내가 틀렸다”고 털어놓았을 때 일본이 발칵 뒤집힌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이 책은 일본에서 13만부나 팔렸다.

그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미국 현대경제학의 놀라운 논리체계와 치밀성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특히 시장이론의 정치성과 이론체계 전체의 높은 완성도에 경의를 표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의 대학시절을 떠올리면서 “단순히 물질적으로 풍요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가족과 지역사회를 소중히 하는 건전하고 밝은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풍요로운 사회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자유로운 시장활동이 아니라 위대한 사회 건설을 내걸고 정부의 역할을 중시했던 신고전파 종합에 기초를 둔 경제 정책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현실을 간과하고 레이건 정권 이후 주류가 된 신자유주의야 말로 오래 전부터 미국형 경제의 중심이었던 것처럼 착각하고 말았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반전치고는 정말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는 “미국 사회가 풍요하고 건전한 중류계급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자유주의적인 의미의 시장원리가 미국사회에 관철돼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이나 케인즈적 정책, 소득 평등화를 위한 세제나 사회복지 정책 덕택이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자유경쟁의 나라, 자기책임의 나라이므로 세계 제일의 풍요한 나라가 됐다는 이미지는 진실의 반밖에 말해주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글로벌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시작한다. “미국 경제학이나 시장 원리주의는 엘리트들의 지배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글로벌 자본주의는 과격한 경쟁을 도입하고 기업이 죽기 살기로 경쟁을 한 결과 소비자와 투자가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노동자와 시민은 골탕을 먹었다”는 과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격차 확대는 시장의 실패라고 하기 보다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내재된 본래적 기능”이라고 정리한다.

그가 말하는 일본 재생을 위한 대안은 다분히 원론적이지만 흥미롭다. “가난은 자조노력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며 국가나 사회가 도와주는 것은 응석을 받아주는 것이라는 신자유주의 사상으로서는 사회가 무너져갈 뿐이고 일본 경제의 잠재력은 점점 더 소멸되고 만다. 이런 상황을 일각이라도 빨리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참고해야 하는 것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와 반대에 있는 북구 여러 나라의 방식이다.”

그는 또 “작은 정부가 더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 “큰 정부에서도 경제를 더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그는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국민들에게 최저한의 생활을 물질적 금전적으로 보장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국민이 각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면 행정 단위를 가능한 작게 하고 사회의 유대, 인간끼리의 신뢰를 회복해 나가는 것 외에 일본을 재생시킬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책의 결론으로 “자유 때문에 자본주의는 스스로 붕괴한다”고 선언한다. “글로벌 자본이 세계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소득 격차 확대가 불행한 사람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지구 환경도 이제는 수복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오염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자괴작용은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괴물의 움직임에 족쇄를 채우기에 앞서 우리들은 욕망의 억제라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먼저 궁금한 건 왜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자들은 반성을 하지 않는 걸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들 가운데는 제대로 된 신자유주의자조차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진보라고 착각하는 얼치기 좌파들이 넘쳐났고 이명박 대통령 때는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성장의 초석을 닦는 것이라고 믿는 기득권 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이들이 여전히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카타니 이와오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괴물로 규정했다. “괴물과 싸우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가 격차의 확대에 주목하면서 자유방임이 아니라 정부의 주도적인 개입을 강조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은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열중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괴물에게 애정을 쏟고 있는 중이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