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결국 다시 매물로 내놓았다. 금호아시아나는 3년 전인 2006년 6월, 대우건설 지분 72%를 1주에 2만6262원씩, 모두 6조4255억원이 들었다. 문제는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한 게 아니라 미래에셋 등 재무적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면서 무리한 약정을 맺은데 있다. 만약 올해 말까지 주가가 3만2450원이 안 되면 이들의 지분을 되사주기로 약정을 맺었는데 26일 종가 기준으로 대우건설 주가는 1만2850원 밖에 안 된다.
만약 재무적 투자자들의 지분을 모두 되사준다면 4조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게 되는데 금호아시아나는 여유가 전혀 없고 다른 재무적 투자자를 찾는데 실패했다. 금호아시아나는 재무적 투자자들 지분 33%만 팔거나 50%+1주만 팔거나 재무적 투자자들과 금호아시아나 보유 지분 전량 72%를 모두 파는 방안 가운데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어떤 경우든 엄청난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금호아시아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알짜배기 매물을 어렵사리 집어삼켰는데 주가가 바닥을 기는 바람에 다시 토해낼 수밖에 없게 됐다.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을 인수했을 때만 해도 재계 순위가 11위에서 8위로 뛰어오르고 금호산업을 더해 건설업계 1위가 된다는 둥 온갖 찬사가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승자의 대박이 아니라 승자의 저주였던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됐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금호아시아나에 넘어가기 전에 대우건설은 정부 소유의 건설회사였다. 자산관리공사가 44%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우건설의 모태는 (주)대우라고 할 수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악성채무는 모두 (주)대우에 남겨두고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 등은 우량 자산만 떼내어 독립시켰다. (주)대우에 들어간 공적자금만 1조5900억원, 대우계열사 전체에는 12조7천억원이 들어갔다. .
자산관리공사는 대우건설을 팔아 5조4천억원을 회수, 서너배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이에 앞서 두산인프라코어(대우종합기계)와 대우캐피탈 등을 팔아 5조9천억원을 회수한데 이어앞으로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인터내셔널 등의 매각도 예정돼 있다. 결국 최대 수혜자는 자산관리공사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공적자금 회수는 물론이고 차익까지 남겼으니 국민들에게도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금호아시아나는 승자의 저주에 빠져 들었고 머니게임의 매물로 떠돌았던 대우건설 역시 손실이 크다. 핵심 자산인 서울역 앞 대우빌딩을 팔아 금호아시아나의 빚을 갚는데 쏟아부었고 대규모 감자를 실시해 수천억원을 날리기도 했다. 주가를 끌어 올리려고 무리하게 저가수주에 나서면서 경영상황이 더욱 악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막대한 국민들 세금을 쏟아부어 살려놓은 회사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주목할 부분은 정부 소유의 기업들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공적소유가 사적독점으로 바뀌게 된다는데 있다. 외환은행이나 SC제일은행, 대우중공업, GM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 두산인프라코어 등이 모두 마찬가지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매각차익을 극대화하고 공적자금도 회수했지만 대박인 경우도 있고 저주가 된 경우도 있다. 껍데기만 남고 알맹이는 모두 털린 경우도 있다. 그러라고 국민들 세금을 쏟아부었을까.
앞으로도 대우조선해양이나 현대건설이나 하이닉스반도체, 우리은행, 산업은행 등등 알짜배기 매물이 숱하게 남아있다. 정부 소유인데 민영화 대상이거나 자산관리공사나 채권은행들의 공동 소유로 남아있는 기업들이다. 정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들 기업들도 모두 대우건설처럼 웃돈을 받고 팔아넘겨서 대박을 안겨주거나 결국 저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국민들에게는 약간의 시세차익만 남을 뿐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기하더라도 지분을 분산 시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키울 필요도 있다. 공기업으로 남겨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문 경영인을 두고 사회적인 감시 체제 아래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도 보장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정 기업에 대박을 안겨주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소유의 새로운 형태를 실험할 수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국민주 형태로 공모를 할 수도 있을 거고 국민연금 기금 등의 참여를 끌어내는 방법도 있다. 만약 대우건설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키운다면 수익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서민 주택을 전문적으로 짓는 건설회사로 키울 수도 있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건설업계의 카르텔을 깨고 반값 아파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비정규직 처우와 하청업체와 부당한 관계를 개선하는 선도적인 사례로 만들 수도 있다.
우리은행이나 산업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대부분 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50%가 훌쩍 넘는 마당에 그나마 남은 마지막 토종은행을 다시 매물로 내놓을 이유가 있나.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비싸게 팔려면 50% 이상의 지분을 한꺼번에 넘겨야 하겠지만 어떻게 파는 게 우리 경제 전반에 더 도움이 될 것인지, 이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를 높이는 방법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언론 보도는 금호아시아나의 실패의 원인을 다양한 각도로 분석하고 있지만 반복되는 승자의 저주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없다. 대우건설의 경우는 흔한 머니게임과 다르다. 정부 소유의 기업을 어떻게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대우건설은 그 실패 사례다. 여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비슷한 실패를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다. 기술만 털리고 껍데기만 남은 쌍용차의 경우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