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이 22일 미디어 관계법을 직권 상정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예고되고 있지만 이날 직권상정될 법안 가운데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도 있다.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금융지주회사법은 은행을 지배하지 않는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를 자회사 및 손자회사로 거느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디어법 때문에 거의 관심조자 받지 못하고 있지만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는 법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가장 큰 혜택을 받게 되는 사람들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일가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경우 삼성전자와 삼성카드 등을 비롯해 다른 계열사들을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로 둘 수 있게 된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동일차주에 대한 신용공여한도를 적용배제하기로 한 부분인데 삼성생명의 자회사인 삼성카드 등이 삼성생명의 회사채나 기업어음 등을 매입해주더라도 제재를 받지 않게 된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삼성카드의 자산 14조4336억 원의 5%인 7216억 원을 삼성생명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끌어들인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 지분을 늘려 이 전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일도 가능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부는 금융위기 가능성 감소 및 대기업 집단의 복잡한 소유지배구조 개선, 경쟁력 있는 금융그룹의 육성을 위한 법안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경 제개혁연대는 “자산운용규제의 세계적인 추세는 자산유형별 규제는 완화하되, 여신 집중의 위험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고 특히 금융그룹의 연결감독을 강화하는데 완전히 합의한 상태인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면서 “이번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오히려 비은행지주회사에 대한 자산운용규제를 완화하고 있어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교수는 “금융지주회사법은 불충분하나마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하게 돼 있지만 공정거래법에는 이런 규제가 아예 없다”면서 “정무위에 상정되어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지배에 대한 규제 부분은 대폭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정 수 이상의 금융자회사를 지배하거나 자산총합이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두어 금융지주회사법의 규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미디어법 통과에 가장 앞장선 신문사가 삼성계열 중앙일보이고,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으로 가장 큰 특혜를 보는 업체가 삼성그룹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김형오 의장의 무리한 직권상정 강행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삼성 특혜법을 위해 국민경제를 볼모로 삼는 국회의장은 향후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시작된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금산분리 원칙과 금융규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증명해 준다”면서 “금융지주회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등과 삼성전자 등을 핵심 계열사들을 모두 포괄하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3세 승계도 합법화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은 숱한 의혹에도 공식적으로는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은 지난해 경영쇄신안을 발표하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약 20조 원이 필요한데 당장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시간을 갖고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사자인 삼성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보수·경제지들은 이미 지난 4월 국회에서 통과된 은행법 개정안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돼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