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추가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형량에는 변화가 없고 여전히 집행유예를 받게 됐다. 이 전 회장은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와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헐값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대법원이 삼성SDS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바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 전 회장이 이미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상태라 이날 유죄 판결로 형량이 늘어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재판부는 “기존 선고 형량을 늘릴 만큼 죄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당시 비상장법인의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법령이나 판례 등이 존재하지 않았고, 행사가격을 적정가치보다 훨씬 낮게 정했다 해도 위법성을 인식하기 어려웠다”는 게 이유다.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은 BW의 적정가격이었는데 2심에서 44억원으로 산정했던 손실 규모가 이번 판결에서는 227억원으로 불어났다. 50억원을 밑돌면 업무상 배임이 적용되지만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면소 판결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 50억원이 넘기 때문에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이 적용돼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도 형량을 늘리지는 않았고 여전히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전 회장은 이미 1심과 2심에서 일부 유죄가 선고됐지만 집행유예를 받아 실형은 살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대법원이 에버랜드 사건에 무죄를 확정지으면서 삼성SDS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긴 했지만 결국 요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여론에 밀려 유죄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처벌은 하지 않는 이상한 판결인 셈이다. 어쨌거나 집행유예를 선고하겠다는 법원의 강력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애초에 같은 헐값 발행인데 에버랜드는 무죄, 삼성SDS는 유죄인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특경가법에 따라 조세포탈 규모가 10억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되는데 이 전 회장의 탈세 규모는 456억원이었다. 법원은 이를 작량감경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징역 3년이 넘으면 집행유예를 줄 수 없기 때문인데 이 전 회장의 다른 범죄 사실을 모두 더해도 이 마지노선을 넘지 않았다.

(언론 보도를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삼성그룹이 재판을 앞두고 지난 몇달 동안 광고를 거의 풀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수 언론이 재판이 빨리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려왔습니다. 재판이 끝나야 광고를 풀거라는 거죠. 섣불리 삼성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언론이 많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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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역시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라는 기본적인 권리는 지켜지기 힘든것 같습니다. 재벌에게는 500억에 육박하는 세금에 징역3년을.. 10억이상의 세금 포탈에 무기 또는 5년의 징역형을 내리는 이러한 이상한 법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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