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노환이기도 했지만 그의 죽음이 안타깝고 이토록 마음이 아픈 것은 그가 평생을 다해 추구해왔던 가치들이 함께 무너지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는 3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1971년, 그의 나이 47세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박정희에게 94만여표로 뒤졌지만 그 선거는 최악의 부정선거였고 선거에는 이겼지만 투표에 졌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한 달 뒤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심하게 다치게 된다. 2년 뒤인 1973년에는 일본에서 납치당해 바다에 빠져죽기 직전 가까스로 구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1980년 전두환 집권 직후 내란 음모 등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국제 사회의 반발에 밀려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1982년에서야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다.
그는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권력이 그를 두려워했던 것은 그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유일한 구심점이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끌려가던 그 엄혹한 시절,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춰 수군수군 그의 근황을 묻곤 했다.1987년 6월 항쟁 이후 현실 정치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누리는 민주와 평화, 인권 등의 가치들이 그가 치러낸 힘겨운 투쟁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안타까운 건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그가 추구했고 그가 일궈왔던 가치들이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재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시장이 꿰어 찼고 살림살이도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권력은 자본의 도구로 전락했고 허울좋은 인권 역시 정작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보여준 뜨거운 눈물은 그가 견뎌왔던 엄혹한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여전히 그의 투쟁이 현재 진행형임을 의미한다.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2009년 6월11일 `6.15 남북 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 강연에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만평은 미디어오늘 이용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