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이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3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감세를 통한 투자확대 및 소비진작을 기대했는데 그런 긍정적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며 “법인세와 소득세의 추가 감면을 2년 동안 유예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밝히면서다. 경제단체들은 즉각 반발했고 보수·경제지들도 거들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가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부딪히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의장은 “기업들이 감면혜택을 받으면서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면 차라리 올해에 이어 내년에 실시되는 추가 감면을 유예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재원을 경기 활성화를 위한 재정지출 확대정책에 활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김 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기업들이 왜 투자를 하지 않느냐는 엄포일 수도 있고 부자 감세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의식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정부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하할 계획이다. 법인세는 과표 2억원 초과구간 세율이 25%에서 올해는 22%, 내년에는 20%로 낮아진다. 소득세는 과표 8800만원 이하 구간에서 8~26%인 세율이 올해 6~25%, 내년에는 6~24%로 낮아진다. 8800만원 초과 구간에서는 35%에서 33%로 낮아진다. 부자 감세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처럼 대기업과 고소득 계층에게 혜택이 집중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의장의 문제제기는 시의적절하지만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이유가 세금 부담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애초에 논의의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현금 유보율도 500%를 웃돈다. 세금을 깎아주면 안 하던 투자를 더 하게 될까.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감세를 남발한 것도 어설프지만 투자 안 할 거면 감세는 없던 일로 하겠다며 투정을 부리는 것도 실소를 자아내는 일이다.

내년 이후 세수 감소분 가운데 법인세 9조3150억원과 소득세 4조106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77.3%에 이른다.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을 유보한다면 세수부족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 의장의 문제제기는 일단 급한 불을 끄고 재정확대를 통해서라도 경기진작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에서 비롯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배적인 의견은 아니라고 하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런 반발이 공론화되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부터 밀어붙인 감세를 통한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라는 외부 변수 때문에 좌절하고 말았다. 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세운 747 공약은 물 건너 간지 오래고 이른바 MB노믹스는 4대강 개발로 포장한 한반도 대운하의 집착 말고는 아무런 실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집권 연장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이 이에 반발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보수·경제지들의 반응이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우리도 부자 감세를 막았다’는 명분을 쌓으면서 지역민원성 사업예산을 늘리려는 혐의가 짙다”고 지적했다.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거나 세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감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에 휘둘려 감세계획을 바꾸려 한다는 인상이 강하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중앙일보가 한나라당에게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쏟아붓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포퓰리즘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붙이던 딱지 아니었던가. 중앙일보의 사설에서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분열을 보는 보수진영의 조바심도 읽힌다. 중앙일보의 이같은 억지 부리기는 애초에 무차별 감세가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와 상반되는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부자 감세를 두둔할 논리적 근거를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신문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논조를 보이는 곳이 많다. 세계일보는 “국회가 감세 유보 카드를 무기 삼아 대기업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아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지적했고 문화일보는 “부자감세라는 좌파 논리에 흔들려 감세 추진 원칙을 어겨선 안되며, 올해 정부 재정 상황이 악화된 것도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 현상이므로 전체 기조를 흔들 수 없다”는 한나라당 내부 반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무작정 나무라기보다는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면서 “줄어드는 세수를 메우는 방법도 다양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법인세·소득세 감면은 그대로 두고 다른데서 해법을 찾으라는 이야기다. 그 대안으로 1990년대 영국 대처 총리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은행과 대우조선해양 등 공적자금이 들어간 공기업을 서둘러 민영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한국경제는 좀 더 직설적인 화법을 선택했다. 이 신문은 “무려 13조원에 달하는 감세 계획을 불과 1년 만에 다시 뒤집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법인세 인하는 당초 기업 국제경쟁력이나 외자유인책 등의 차원에서 검토되고 결정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세금을 깎아줬다고 투자 및 소비가 금세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면서 “세율인하를 미룬다면 경기회복은 더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경제의 대주주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원사들이다. 이 신문은 “이런 식으로 1년 만에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도대체 누가 정부의 정책을 믿고 투자하겠느냐”면서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는 예정대로 추진돼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 역시 반대의 논리가 부족하다. 세수가 펑크 나거나 말거나 경기진작의 재원이 부족하거나 말거나 약속한 거니까 무조건 지키라는 생떼 부리기에 다름 아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분열 조짐은 그동안 여러차례 감지돼 왔다. 올해 4월 정부가 1가구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중과 폐지를 발표하자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이를 반대하고 나서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4·29 재보궐 선거를 앞둔 무렵이기도 했지만 한나라당이 여론의 반발을 심각하게 읽고 있으며 의회 민주주의가 미약하게나마 기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정부는 그 뒤로도 미묘하게 한나라당과 충돌해 왔다.

최근에는 장기주택마련저축 소득공제를 폐지한 뒤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보완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발 물러나기도 했다. 영리학원에 대한 부가가치세와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 소비세 부과도 논란이 됐다. 공모펀드 증권거래세 면제 폐지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난색을 표명한 바 있다. 입법 취지는 차치하고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상황이라 법안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갈등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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