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이 책을 20권 넘게 사서 주변에 나눠줬다고 한다. 나는 동생에게 빌려서 봤는데 다 봤다고 했더니 가져가 버렸다. 생각나는대로 간단히 정리한다.
동생은 무엇보다도 안식일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7일째 되는 날 하느님이 쉬었으니 우리도 쉬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왜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내렸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이 쉰 것처럼 일주일 동안 힘들게 일했던 사람들을 쉬게 하라는 이야기다. 당신도 쉬고 당신의 노예와 가축도 쉬게 하라는 이야기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사람들을 배려하라는 이야기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흔히 부자가 천국에 가려면 훨씬 더 깊은 믿음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김규항은 “부자는 아무리 믿음이 깊어도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김규항은 빈부격차는 죄악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 역시 하느님 보시기에 옳지 않다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가난해지지 않는 이상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바리새인에 대한 해석도 독특하다. 우리는 흔히 바리새인을 율법을 강조하는 위선주의자들로 단정짓고 비난하지만 김규항은 이들을 양심적인 지식인 계층으로 평가한다. 이들은 적당히 잘난 척하고 대중을 계몽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에 우쭐해 하지만 정작 치열하게 싸우기 보다는 “현실의 외피를 덜 추악하게 만드는 일에 머문다”. 김규항은 ‘바리새인을 욕하지 마라, 한발 물러나서 세치 혀로 현실을 재단하는 당신이 바로 바리새인 아니냐’고 묻는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갖다대라”는 비폭력주의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오른뺨을 맞는다는 건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맞았다는 말인데 이는 예수가 살던 시절에는 상대를 모욕하는 행위였다. 왼뺨을 갖다대라는 건 때릴 거면 제대로 때리라고 반발하라는 의미다. 당신에게 모욕당할 이유가 없다, 나도 너와 똑같은 존엄한 사람이라는 저항의 의미라는 이야기다.
김규항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수천명을 먹이거나 절름발이를 걷게 하거나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는 등 예수가 보여준 여러 기적을 단순히 비유로 해석하거나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구체화한다. 예수는 성전 앞 장사치들의 좌판을 뒤엎고 주류질서를 조롱하고 가장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면서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몸소 실천했다.
예수는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 등 우리가 쉽게 잊고 지내지만 가장 근본적인 가치들을 강조했다. 가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을 껴안으면서 부당한 차별에 함께 맞섰고 부자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경고하면서 거짓 율법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그는 군대를 끌고 오지도 않았고 하늘을 가르거나 벼락을 내리지도 못했고 결국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었지만 지배계급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됐다.
김규항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사람들은 한 평범한 시골청년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지게 됐는지를 보지 않고 하느님 아들의 인간 흉내 쇼를 보고 감동한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천박한 신앙도 이런 오해에서 비롯한다. 예수의 삶을 본받기 보다는 그가 불러올 기적을 기대한다. 예수가 뒤집어 엎었던 성전 앞의 좌판은 오늘 한국 기독교에도 여전히 펼쳐져 있다.
예수가 꿈꿨던 혁명은 하느님 보시기에 올바른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나라는 하느님의 아들딸들, 누가 봐도 올바른 나라여야 한다. 당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짓밟지 않는 그런 나라여야 한다. 혁명이란 게 거대한 이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 이를테면 “사람이 사람 꼴을 갖추고 사람과 사람 관계를 회복하는데서 출발하자”는 이야기다. 그게 예수가 2000년을 넘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예수전 / 김규항 지음 / 돌베개 펴냄 / 1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