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중도실용과 친 서민 정책을 집권 하반기 핵심 정책기조로 내걸었다. 재래시장을 찾아 떡볶이를 먹는가 하면 지방까지 내려가 농민들 틈에 섞여 고추를 따기도 했고 상인들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저소득 계층의 어려움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일자리를 늘리겠다고도 했고 이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수천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언론 보도도 쏟아졌고 덕분에 지지율이 50% 가까이 치솟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친 서민 정책은 우선 대학생들이 취업 한 뒤에 학자금 대출을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그 위에 보금자리 주택 18만호를 건설하는 것을 비롯해 2조원 규모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 이른바 미소금융을 확대하는 것 등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프로젝트는 언뜻 보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넘어서는 파격적인 서민 복지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무리 많은 시장을 찾고 떡볶이를 먹고 고추를 딴다고 한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적당히 세금을 쏟아붓고 숫자를 채우는 생색내기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일부 언론에서 이 대통령의 행보를 따라잡으며 호들갑스럽게 해석을 곁들이고 있지만 그야말로 구태의연하고 해묵은 이미지 정치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중도실용 친 서민 정책에서는 진정성과 의지를 발견할 수 없다.
대학 등록금 대출부터 살펴보면, 물론 대출을 안 해주는 것보다 낫겠지만 물가 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가뜩이나 대학 졸업자 취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을 밑도는 상황에서 취업 후에 갚으라는 조건은 오히려 20대 초중반의 신용 불량자를 대거 양산할 우려도 있다. 근본적으로 정부 지원을 늘리면서 등록금 인상을 규제하고 장기적으로 교육 공공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보금자리 주택 역시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세나 월세에 사는 사람들은 집이 없어서 못 사는 게 아니라 집이 너무 비싸서 못사는 것이다. 아무리 공급을 늘린다고 한들 1년 연봉의 수십배에 이르는 집을 살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만약 정부가 서민들의 주거 대책을 고민한다면 우선 집값을 하향 안정화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동시에 실제 수요를 웃도는 투기적 수요를 뿌리 뽑을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의욕적으로 도입한 미소금융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어설픈 표절일 뿐이다.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 이른바 마이크로 크레딧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이나 동정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주자는데 의의가 있다. 그런데 정부는 기업과 은행들을 압박해 펀드의 규모를 키우는 데만 급급한 실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고 말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가난해서 등록금 낼 돈이 없다면 정부에서 빌려줄 테니 일단 공부를 하고 취업해서 갚으라고 말한다. 집값이 비싸다고 말하지 않는다. 더 많이 지어줄 테니 은행 빚을 얻어서라도 사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대출 받아서 사업을 하라고 말한다. 중소 영세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겨우 1천만원 대출로 과연 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대학생들 절대 다수는 취업을 못하거나 지방 중소기업에 들어가거나 그나마도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넥타이를 메고 출근하는 이른바 상위 100대 기업의 정규직 사원은 5%에도 못 미친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보다 실업률이 낮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취업을 아예 포기했거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포함하면 실업률은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적 착시현상일 뿐이다.
터무니 없이 비싼 아파트 가격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빠졌는데 우리나라만 오히려 더 올랐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 텐데 정부는 여전히 아파트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선진국 대비 임대 아파트 비중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인데 정부는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 정부는 아파트 가격을 낮추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미소금융 역시 진정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마이크로 크레딧이 태동했던 방글라데시의 경우 송아지 한 마리만 있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1천만원을 대출 받아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노점상 말고는 없다. 다행히 5천만원 이상을 대출 받아서 자영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10년 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형 가전제품에 개별소비세를 걷겠다는 것도 친 서민 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수를 늘릴 생각이라면 애초에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하지 말았어야 하고 법인세와 소득세 등 직접세를 더욱 강화했어야 했다.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무주택자의 월세를 소득공제하기로 하는 등의 당근을 내놓기도 했지만 전체 감세 규모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생색내기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 건은 고소득 특권 계층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이른바 ‘강부자’ 정부라는 딱지 붙이기였다. 수많은 보안 요원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여서 굳이 언론사 카메라에 떡볶이 먹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도 이런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년 동안 내놓은 정책은 규제 완화와 감세, 철저한 기득권 강화 이데올로기에 집중돼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규제완화와 감세를 남발하면서 친 서민 정책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마련한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며 가뜩이나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가 절박한 상황에서 이 같은 우파 포퓰리즘이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중도실용이라는 포장을 내걸었지만 이는 중도도 아니고 실용도 아니다. 기업과 보수 기득권 계층의 이해를 반영하는 ‘패거리즘’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만약 정부가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염려한다면 우선 어마어마한 사교육비를 낮추는 근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한 학자금 대출 확대라는 꼼수가 아니라 정부 지원을 늘려서 대학 등록금을 낮추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도 있다. 아울러 실업과 의료, 노후 등의 사회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해법을 정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거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향후 5년 안에 끔찍한 경기 침체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언제부터 집이 사고파는 투자 수단이 됐나. 정부는 왜 부동산 부자들을 규제하지 않는가. 국민들의 주거의 권리는 어디로 갔나. 선진국처럼 정부가 좋은 집을 싸게 지어서 싼 값에 임대를 해줘야 한다. 그래서 집값을 낮추고 부동산에 몰려 있는 엄청난 자산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돌려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게 진정한 친 서민 대책이 된다.
만약 정부가 저소득 계층의 금융 문제를 고민했다면 다른 나라의 마이크로 크레딧을 흉내내고 만만한 기업들을 윽박질러서 자금 출연을 강제할 게 아니라 대부분의 은행들이 수익 확보에 목을 매는 현실을 구조적으로 개선하고 은행의 공공성을 모색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득 양극화의 핵심 원인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진정한 친 서민 대책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중도실용과 친 서민 정책을 내세우려면 일단 감세와 규제 완화라는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지난해부터 재정지출을 남발한 덕분에 올해 하반기부터는 이미 재정 안정성이 우려되고 있다. 감세가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증세가 필요한 상황이다. 규제 완화가 아니라 효율적인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애초에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을 내세우면서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유일한 해법이라면 원론적이지만 사회적 연대와 공공성의 확보 밖에 없다. 세금을 더 많이 걷어서 교육과 실업, 의료, 노후 등 사회 안전망을 확대·강화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당히 푼돈을 뿌릴 게 아니라 이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하고 더 근본적으로는 가난하더라도 차별받지 않고 자유가 제약받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 이데올로기에는 아무런 실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