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7일 8면에 실린 “법 허점 노린 산별노조의 복수노조 설립 늘 듯”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왜곡보도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다른 보수성향 신문들이 복수노조 허용을 요구하는 것과 상반되는 논조도 주목된다. 중앙일보는 복수노조 허용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는데 복수노조 허용이 2012년 7월로 미뤄지자 표정관리가 안 되는 분위기다. 기사 전반에서 삼성의 향기가 짙게 풍겨 난다.
문제는 복수노조 허용은 유예됐지만 산별노조에 의한 복수노조는 허용된다는 것. 중앙일보는 “복수노조 허용시기가 미뤄지면서 이들 사업장은 지금처럼 모든 노조와 교섭하는 등 혼란과 노무비용 증가를 계속 감수해야 한다”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도 시행이 늦춰졌기 때문”이라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애초에 이 신문의 관심이 복수노조를 허용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교섭창구 단일화, 그리고 두 번째 노조의 배제에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삼성은 노조 설립 움직임이 감지될 경우 이름만 있는 유령 노조를 내세워 노조 설립을 차단하곤 했다. 삼성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지 않는 게 아니라 애초에 노조를 만들 수 없는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되면 삼성에도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크다. 중앙일보가 복수노조 허용 유예를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중앙일보는 이젠텍의 사례를 들어 복수노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젠텍이 삼성의 미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중앙일보는 “이곳에는 이미 노조가 있는데 2005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분회를 만들면서 파업이 잦아졌고 교섭은 따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젠텍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제2노조가 생기면서 노사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복수노조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기도 했다.
기사에는 구체적인 설명이 빠졌지만 이젠텍의 노조는 이름만 있는 유령노조다. 금속노조 강윤경 공보부장은 “2005년 이젠텍 분회가 교섭을 요청했지만 사측은 이미 노조가 있으므로 교섭에 응할 수 없다며 교섭을 거부해왔다”고 밝혔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2000년에 설립된 노조는 조합비를 징수하지 않았고 대부분 노동자들은 노조 설립 여부조차 알지 못했다. 유령노조를 내세워 진짜 노조와 교섭을 거부해 왔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사례도 많다. 동희오토의 경우도 사내하청 11개 업체에 친인척과 인사담당 등으로 유령노조를 설립해 교섭을 거부해 왔다. 인지컨트롤스 안산공장에서도 직원 150여명 가운데 136명이 금속노조에 가입해 교섭을 요청했으나, 2명이 가입돼 있는 유령노조를 빌미로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휴먼엔테크도 비슷한 사례다. 교섭창구를 단일화한다는 이유로 직종별,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강 부장은 “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가 시행될 경우 사회적 약자들이 교섭조차 할 수 없게 된다”면서 “중앙일보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면서 복수노조가 유예될 경우 자본가에게 마치 큰 타격이 있을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복수노조 허용 못지않게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노동계에서도 복수노조 허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지만 역시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